내가 미국시민이 된지는 40년이 넘었으니 대선을 치룬 것도 열 번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제서야 미국의 대통령 선거과정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나는 남을 공격하는 선거전이 매우 싫다. 더구나 비열한 언사를 마구 내 뱉는다 여겨지는 후보는 아예 접어놓고 싶다. 그런데 올해는 바로 그런 후보가 앞서 달리고 있어 화가 나서 더욱 열심히 TV를 본다.
오늘도 사우스 케롤라이나의 프라이머리 진행과정을 보려고 CNN을 켜니까 장엄한 장례미사의 퇴장장면이 보였다. 알고 보니 며칠 전에 타계한 대법원판사 앤터닌 스캘리아의 장례미사였다. 중계가 끝나고 앵커맨과 몇명이 미사에 대한 코맨트를 하는데 스캘리아 판사의 아들로 알링톤 교구사제인 Paul 스캘리아 신부가 미사중에 한 강론에 대한 코멘트가 주된 얘기였다. 간간히 유머까지 섞인 강론의 깊이와 아버지를 보내는 아들이 장례미사를 끝까지 잘 집전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놀라움과 칭찬이었다.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아들 스캘리아 신부의 강론을 들어보았다. [
?http://www.mediaite.com/tv/reverend-paul-scalia-delivers-a-moving-homily-at-his-fathers-funeral/] 고별사라면 으레 망자를 기리는 마음으로 과장되고 잘 포장된 것이라 여겨왔는데, 아버지와 함께 하신 하느님의 축복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담담하게 전하는 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확신을 가진 겸손한 신앙생활이 어떻게 사회에 기여하게 돕고, 사랑이 가득한 일치의 가정을 이루어 가는지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마도 그런 확신 있는 신앙이 아버지를 보내는 스캘리아 신부가 담담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정성스레 장례미사를 드릴 수 있게 하는 힘 일거라는 사실에 감동을 받는다.
스캘리아 판사의 뛰어난 헌법해석, 확신을 가진 명확한 논고, 그의 강한 성격 등에 대해서 자주 읽었던 터라 나는 그를 고집스러운 괴팍한 천재판사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CNN이 올린 또 다른 보고를 보면서 마음대로의 내 판단이 얼마나 잘못 되었나 생각했다. 법해석의 차이로 법정에서는 신랄한 설전을 벌리곤 하는 긴스버그와 개인적으로는 퍽 가까운 친구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두 부부가 함께 연말도 보내고 두 가족이 외국여행도 같이 하곤 하는 관계였다고 한다. 의견이 달라 반대편의 끝에 서있으면서도 논고를 쓰는 것을 도와줄 만큼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깊은 감동을 준다.
오늘 이 나라의 정치인들, 공직인들 중에 더 많은 ‘다른 앤터닌 스캘리아’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자신의 재선을 위해서, 로비스트의 이익을 위해서, 편파적으로 갈라져 있는 국회의 양상이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가슴이 다시 답답해진다. 백악관 입성을 위해 달리는 대통령 후보자들도 오늘 다시 마음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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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숙 (대학 운영이사/쇼트 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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