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저 보졸리·로버트 이블링의 삶,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 폭로하면 회사^동료 위험 결국 언론에 익명으로 증언
▶ 로켓추진체 담당 엔지니어들로 결합부 고무패킹 저온손상 예견 발사 연기 항변 묵살 당해

1986년 1월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73초만에 폭발했다. 발사 당시 장면.
우주왕복선‘챌린저’호 참사 30주년이 된 올해, 그간 고통 속에 삶을 영위했던 당시 챌린저 프로젝트 관련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들 중 로저 보졸리(1938~2012)와 로버트 이블링(1926~2016)이 있었다. 둘은 추진체 제작업체 모턴 사이어콜(MortonThiokol)사의 챌린저‘고체(연료) 로켓추진체’(SRB)제작 프로젝트 담당 기술자였다. 그들은 가장 먼저 참사를 예견했고 발사를 막으려 했지만 결정권자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당일, 우주선폭발장면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그들은 뻔한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분노에 함께 통곡했다고 한다. 챌린저호 참사는 추진체 부품 결함,엄밀히 말하면 결합부 고무패킹(O-Ring)의 저온 손상 때문에 빚어졌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연방항공우주국(NASA)의 그릇된 의사결정 구조와 사이어콜 측의 안일한 판단이 원인이었다. 그들은 기술진의 사전경고와 발사연기 주장을 묵살했다.
대통령 직속 사고조사위원회(일명 로저 위원회)의 첫 조사보고서가 나온 건 그 해6월이었지만, NASA의 우주왕복선 프로젝트는사고 후 근 3년간 전면 중단됐다. 사이어콜은존폐위기에, 직원들은 실직위기에 몰렸다. 유타주 브리검의 사이어콜 공장 주변은 ‘살인자들’이라는 낙서로 뒤덮여 있었다. 사고에 연루된이들, 그릇된 결정의 책임을 져야 했던 이들은대부분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참사 후 그들은 기술자적 양심과 (자신들과동료들의) 직장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또 살인자가 아니라는 자기존재 증명 욕구의 틈바구니에서 고통 받았다. 자신들이 면책 받는 길은 직장과 최대 고객인 NASA를 배신하는 거였고, 무엇보다 동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거였다.
참사 3주 뒤 공영방송 NPR이 특종 보도한참사 속보(“사전경고가 있었다” )에는 그들(둘외에 부서 책임자 앨런 맥도널드와 동료 기술자 에이널드 톰슨, 브라이언 러셀)의 증언이 익명으로 실려 있었다. 직장에 계속 남은 이들과달리 둘은 심리적 중압감으로 장기 병가를 냈다. 그건 사실상 자의반 타의반의 퇴사였다. 당시 보졸리는 48세, 이블링은 60세였다.
하지만 이후 둘의 행로는 대조적이었다. 실명으로 진실을 처음 공개하고 로저 위원회에서 증언한 보졸리는 동료들과 지역 여론의뭇매에 분노했다. 88년 마음을 추스른 그는이후 숨을 거둘 때까지 300여 차례 국내외대학과 연구소 강연으로‘ 기술자의 윤리와 책임’을 전도했다.
반면 내내 자신을 감추며 살았던 이블링은분노를 내면화해 자책으로 스스로를 고문했고,89년 무렵부터 지역 철새 보호 등 환경활동가로 여생을 보냈다. 그가 자신을 드러내며 그간겪은 갈등과 죄의식을 토로하고 NASA와 사이어콜의 사과를 요구한 건 숨지기 직전인 지난 1월이었다.
우주선에 이륙 추진력을 공급하는 SRB는 연료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로 다단계로 제작돼 연소한 탱크들을 순차적으로 분리하며 상승한다. 고체연료는 점화열로 기화해 연소하는데, 기화한 연료가 결합부에서 새지 않도록 막아주는 내열 합성 고무패킹이 ‘오링’ (O-Ring)이다. 사이어콜 기술진은 1985년 1월24일 회수된 SRB 오링이 손상된 사실을 발견, 섭씨 11.7도 이하에서는 탄성을 잃고 경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들은 챌린저 SRB 제작 일정을진행하는 한편, 오링 소재 교체와 설계변경 등별도의 개선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경영진과 NASA에 건의했다.
챌린저 발사 당일 플로리다의 예보기온은 평년보다 16도 이상 낮은 영하 1.1도였다. 사이어콜 기술진은 플로리다 케네디 발사기지에 파견된 부서장 앨런에게 (이블링이) 전화를 걸어 발사 연기를 요구했고, 하루 전인 25일 밤 NASA책임자들과 긴급 전화회의를 가졌다. 그러나 발사 강행 결정이 NASA와 사이어콜 경영진에 의해 이뤄졌다. 이미 두 차례 발사가 연기된 터였고, 발사 예정일은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의회 연두교서 발표일이었다. 레이건은 연설에서 챌린저 발사 성공을 언급한 뒤 NASA를격려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챌린저는 이륙 73초 만에 폭발했고, 승무원 7명 전원이 숨졌다.
NASA 사고 조사에 참가한 앨런과 보졸리는모든 정황과 진실을 밝혔지만, 자체 보고서에는 조립 하자 가능성 등이 장황하게 언급됐고,오링 문제점은 몇 단락 삽입되는 데 그쳤다. 보졸리는 노골적인 원인 은폐시도에 맞서기 위해자신의 85년 문서를 여러 부 복사해 숙소와 승용차, 브리검의 집 등에 분산해서 간직했다.
그들은‘ 내부고발자’로 몰려 NASA와 경영진,직장 동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주요 보직에서 배제됐고, 정보로부터 차단당했고, 당연히승진 명단에서 누락됐지만, 보졸리는 굴하지 않고 1988년 그는 로저 위원회에서 증언했다.
보졸리는 1988년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의‘ 과학 자유와 책임상’을 탔고, 그 이후 대학과 시민단체 등에 초청돼 기업 윤리와 데이터에 근거한 의사 결정의 중요성 등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결장과 신장, 간에 암이 퍼졌다는 진단을 받은 지 2주 뒤인 2012년 1월6일 별세(향년 73세)했다.
반면 사이어콜 SRB 엔지니어 로버트 이블링은 자책하며 30년을 살다 숨지기 석 달 전에야세상에 나섰고, 모든 이들을 대신해서 사고 책임자들에게서 사과를 받아냈다. 그는 지난 3월21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로저 보졸리

로버트 이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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