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걸이 하나가 여러 사람 잡고 나라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은 ‘김건희의 나토 목걸이’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40년 전, 프랑스에서도 초호화 목걸이 스캔들이 터져 왕과 왕비를 단두대에 보내고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한 백작부인이 여왕을 사칭하며 값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취한 희대의 사기행각은 지금 들어도 그 대담성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 세기의 사건이었다.
발단은 1772년, 루이15세가 애첩 뒤바리 부인을 위해 가장 호화로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만들라고 명한데서 시작됐다. 왕실 보석상은 무려 647개의 다이아몬드(총 2,800캐럿)를 사용해 화려찬란한 목걸이를 만들었는데, 완성 직후 루이15세가 사망하고 이어 왕위에 오른 루이16세가 뒤바리 부인을 추방해버리면서 주인을 잃게 되었다. 파산위기에 처한 보석상은 새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사달라고 간청했으나 그녀는 워낙 고가(현시가 1,750만달러)인데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며 거절했다.
이때 슬그머니 끼어든 사람이 잔느 드 라모트 백작부인. 몰락한 옛 왕가의 사생아 출신으로 왕실 부근에서 얼쩡대던 그녀는 이 엄청난 목걸이를 가로챌 계획을 세우고 먹잇감을 물색한다. 여기에 걸려든 사람이 루이 드 로앙 추기경, 당시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눈 밖에 나서 출셋길이 막힌 터라 왕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라모트 백작부인은 자신이 왕비와 친하다고 속이고, 왕비가 목걸이를 사고 싶은데 너무 비싸서 사람들 눈이 두려우니 추기경이 몰래 사서 전해달라는 왕비의 편지를 건넨다. 물론 필체는 위조한 것이었고, 그녀는 심지어 직접 왕비를 만나게 해주겠다며 야밤에 베르사유 숲으로 데려가 어둠속에서 왕비 닮은 매춘부를 알현하도록 주선까지 했다.
완전히 속은 추기경은 보석상을 찾아가 대금은 왕비가 분할 지급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목걸이를 사다가 라모트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목걸이를 손에 넣자마자 남편에게 런던으로 가져가 다이아몬드를 모두 해체하여 팔아버리도록 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진상이 드러났다. 목걸이 대금을 받지 못한 보석상이 추기경과 백작부인에게 독촉해도 안 나오자 왕비에게 직접 호소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앙투아네트는 분개하여 사건을 조사하도록 했고, 백작부인과 추기경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 조사를 받았다. 주범인 백작부인은 사기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혔고, 추기경은 진짜로 속았던 데다가 교황청을 등에 업고 있어 무죄로 풀려났다.
하지만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였다. 안 그래도 프랑스의 숙적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왔다는 점과 사치스러운 생활 때문에 이미지가 나빴던 그녀는 이 일로 인해 치명타를 입었다. 왕비는 결백했지만 민중은 그녀를 믿지 않았고, 오히려 백작부인에게 동정여론이 쏠리면서 탈옥을 방조한다. 이 여자는 영국으로 도주한 후 회고록을 써서 왕비에 대해 더 많은 허위 악성루머를 퍼뜨렸고, 국민들의 원성과 원망이 극에 달하면서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한 결정적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역사가들은 이 다이아몬드 목걸이사건만 없었더라도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적어도 단두대 처형만은 면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18세기 최고 권력자인 여왕과 교황을 이용해먹은 백작부인, 21세기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의 아내가 되어 주체할 수 없는 물욕의 노예가 되었던 김건희, 누가 더 간 큰 사기꾼일까? 사실 비교거리도 안 된다. 라모트는 목걸이 하나였지만 김건희는 현재까지 드러난 수사대상 혐의만 16개에 달하니 말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부터 각종 뇌물수수, 국정개입과 선거개입, 고속도로 노선변경, 명태균과 건진법사 등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손을 안 뻗친 곳이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 중에서 가장 스팟라잇을 많이 받은 것은 ‘나토 목걸이’다. 서희건설 회장이 인사 청탁을 위해 선물했다는 이른바 ‘나토 3종 세트’중에서도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는 처음부터 눈에 띄어 재산신고에서 누락됐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이에 대해 김건희는 ‘빌린 것이다’ ‘모조품이다’ ‘엄마선물이었다’라고 계속 말을 바꾸면서 의혹이 증폭됐다. 심지어 압수수색에 대비해 모조품을 사돈집에 슬쩍 가져다놓는 잔머리까지 굴렸으니 얼마나 교활한가.
목걸이는 국정개입이나 주가조작에 비해서는 급이 낮은 사건이지만, 국민들에게 미친 부정적 여파는 가장 컸다. 다른 사건들은 눈앞에 실체가 보이지 않지만, 목걸이 팔찌 귀걸이 시계는 그 확실한 이미지가 계속 화면에 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토목걸이는 2022년 나토 순방 때 김건희가 초록색 항아리드레스에 검은 상의를 입고 목에 걸었던 모습을 모든 미디어가 지겹도록 내보내고 있어서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어떻게 그렇게 겁 없이 받아먹고 해먹었을까? 앞으로 무엇이 더 튀어나올지, 이 부부의 추악한 실체가 드러날수록 분노를 지나 허탈감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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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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