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년전부터 한인단체 등에 매년 1만5천달러 이상 기부
▶ “방광암 죽음의 고비 넘긴 이후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이유 달라져”

‘워싱턴의 기부천사’ 김한목 <월남전참전자회 부회장>
전쟁을 겪은 참전용사에게도 이민생활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1978년 버지니아 리치몬드로 이민 온 김한목 월남전참전자회 부회장(75, 사진)은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러나 다른 이민자들이 그러하듯 이런저런 사업에 도전했지만 자리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리치몬드에서 메릴랜드 볼티모어로, 그리고 PG 카운티 등으로 옮겨 다니며 다양한 비즈니스 경험을 쌓게 되면서 그로서리와 리커 스토어뿐만 아니라 버지니아 비치에 작은 상가도 운영하게 됐다. 2남 1녀 자식들을 위해 그저 열심히 일만 했던 전형적인 한인 1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한 성공의 보상을 만끽하기도 전에 이러한 성공을 질투하듯 그동안 잠잠했던 전쟁의 상흔이 김 부회장의 삶을 위협했다. 월남전 참전용사들이 겪게 되는 고엽제 후유증 가운데 하나로 15년 전 방광암 수술을 받게 됐다.
김 부회장은 “60세로 끝날 뻔했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다시금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며 “그날 이후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이유가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열린문장로교회에 출석하는 김 부회장은 7-8년 전부터 한인단체나 선교지원 등을 위해 매년 1만 5천 달러 이상 기부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사업하는 입장에서 연말 세금혜택도 받지만 무엇보다 남을 도울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향군단체를 통해 한인커뮤니티센터에도 총 1만3천 달러를 후원했으며 최근에는 MD 코리안 타운에 5천 달러를 후원했다. 김 부회장은 “월남전참전자회의 경우 마땅히 회의를 열만한 장소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인커뮤니티센터가 건립되면 여러 향군단체가 공동으로 사무실을 임대해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MD 코리안 타운을 후원한 배경에 대해서는 “과거 볼티모어에서 사업하면서 어려움을 겪던 시절, 많은 도움을 줬던 백성옥 MD 한인회장을 통해 후원금을 전달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도움이 필요한 한인단체와 교회를 후원하는 일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20대에 월남전을 겪고, 30대에 단돈 500달러를 들고 이민 와 맨손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김한목 부회장의 이야기는 흔한 성공 스토리에 그치지 않고 그 성공의 열매를 한인사회와 함께 나누는 실천을 통해 마지막이 더욱 빛나는 한인사회 귀감이 되고 있다.
<
유제원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