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영국 총리는?
▶ 러시아발 에너지난 타개하려면 ‘서민 연료 지원정책’ 절실한데 국가 부채 늘리다간 역풍 맞아
▶ “시장 신뢰↓ 파운드화 약세 지속”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자진 사퇴는 정치인들이 인플레이션과 높은 금리라는 현실을 오판해서는 안 된다는 냉혹한 경고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대규모 재정지출 확대를 핵심으로 한 감세안을 내놓았다가 거센 역풍에 직면해 20일(현지시간) 역대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스스로 뒤집어쓴 트러스 총리의 사례가 주는 교훈을 이렇게 해석했다. 장기 저성장에 빠진 영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3.6%에서 내년에는 0.3%로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을 감안할 때 대규모 감세로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트러스 총리의 ‘승부수’가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불 붙은 인플레이션을 끌어내리기 위한 중앙은행의 긴축 행보로 차입 비용이 천정부지로 뛰는 상황에서 정부 부채를 더 늘리겠다는 접근은 완벽한 ‘오판’이었다. 조너선 포티스 킹스칼리지 런던 경제학 교수의 표현대로 “잘못된 시기에 들인 잘못된 정책”이었던 영국 감세안은 트러스 총리 개인의 실패를 불러온 것은 물론 영국 정치·경제에 ‘트러스 트라우마’를 깊이 새겨놓았다. 비단 영국뿐만이 아니다. WSJ는 트러스 사태가 엄혹한 인플레이션 시기에 어설픈 재정 확장 정책을 폈다가는 시장으로부터 호된 ‘응징’을 당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 정치권에 던졌다고 평가했다.
트러스 정부의 몰락을 겪은 영국에서는 당장 차기 총리의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로서는 러시아가 유럽행 가스 공급을 끊으면서 불거진 에너지난을 타개하기 위해 서민 연료 지원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상황이지만 국가부채를 늘리려다 퇴진으로 내몰린 트러스 트라우마가 당장 시급한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의 국채 발행에도 제약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러스 총리의 감세안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은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은 정부의 에너지 보조금 지급 기간을 향후 2년에서 내년 4월까지 6개월로 대폭 단축한 바 있다. 제임스 스미스 ING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정부가 에너지난에 제때 대처하지 못하면 내년까지 물가 상승률이 최대 3%포인트 높아지고 경기 침체의 골도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단 무너진 시장의 신뢰를 되살리는 것도 차기 정부의 과제다. 패트릭 베넷 캐나다 왕립상업은행 전략가는 “총리가 바뀌어도 투자자 신뢰가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파운드화는 계속 약세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재정지출에 대한 감시의 눈이 더 매서워져 정부의 정책 수립 과정이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높다. 당장 예산을 감시하는 기구인 재무부 산하 예산책임처(OBR)에 힘이 크게 실릴 것으로 보인다. OBR은 독립 기구임에도 최근에는 경제 관련 통계만 생산해왔지만 앞으로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감시하는 설립 취지에 맞게 위상이 제고될 것이라는 의미다. 헌트 장관도 앞으로 OBR의 공공부채 전망치를 반드시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현지에서는 트러스의 뒤를 이을 차기 총리 자리를 두고 이미 치열한 ‘승계’ 전쟁의 막이 올랐지만 현재의 여건에서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이 같은 트라우마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WSJ의 분석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차기 총리로는 앞서 9월 트러스 총리와 보수당 대표 경선 결선에서 맞붙은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 ‘경선 3위’였던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각종 스캔들로 7월 쫓겨나다시피 퇴임한 보리스 존슨 전 총리 역시 차기 후보 명단에 올랐다. 영국의 한 도박 사이트는 존슨 전 총리의 당선 확률이 26%로 1위 수낵 전 장관(56%)에 이어 2위로 봤다. 보수당 측은 후보군이 일찍 좁혀진다면 24일,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28일께 차기 총리를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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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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