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첫날 내가 갔던 곳은 H마트였다. 이민가방에 캐리어, 유모차, 카시트를 가득 들고 한 손엔 4살 딸의 손을, 태어난 지 갓 100일 된 둘째는 아기띠에 매고 도착했던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낯선 공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미국생활에 대한 막막하고 불안했던 마음은 H마트에 들어선 순간 안도감으로 채워졌는데 코인육수, 미역, 된장, 고춧가루 등을 한가득 들고 온 내가 괜한 고생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이곳엔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있었다.
미국에 와서 내가 얼마나 한식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고 딸도 한식을 먹어야 힘을 내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한국인이구나 싶었다. 타국에서 한국 마트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된 후 읽은 책 ‘Crying in H Mart’도 더 공감할 수 있었다.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느 한쪽으로도 뿌리내리기 어려웠고 엄마와 문화, 정서적으로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25세에 엄마를 잃은 후 한국 음식으로 엄마를 기억하고 이해했다. 보컬인 저자가 낮은 보이스로 읽어주는 오디오북도 이 책의 매력 포인트인데 오디오북을 듣던 어느 날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외할머니. 엄마가 외할머니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보내 드렸을 때가 내가 두 살 엄마는 25살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엄마는 한 번씩 외할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너를 얼마나 예뻐하셨겠니 라는 말을 하시곤 했다. 이 말에는 사실 ‘네가 커가는 시간들을 나도 엄마와 함께 하고 싶다. 잘 키우고 있다고 보여드리고 싶은데 왜 이렇게 일찍 돌아가셨을까? 보고 싶고 그립다’라는 말씀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여태껏 ‘그러게’라는 말 외에 별다른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 엄마는 잔치국수를 좋아하셨는데 미국에 와서 엄마생각을 하며 종종 멸치로 육수를 내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어렸을 땐 잔치국수를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점점 엄마 입맛을 닮아간다는 것과 엄마가 잔치국수를 드실 땐 ‘외할머니가 잔치국수를 정말 맛있게 해주셨었는데’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는 것도 이제야 떠올랐다.
이 책은 구석구석 나를 후벼 팠지만 사춘기 딸과 엄마의 갈등 부분에서도 마음이 아팠다. 결혼 후 미국 땅에서 부족한 언어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한국말로는 세세한 감정표현이 어려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낀 딸. 그동안 아이의 영어교육만을 고민했었는데 미국에 와서 보니 한국의 뿌리를 심어주고자 하는 부모의 노력,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해지는 아이와의 소통을 준비하는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딸은 훗날 나를 어떤 엄마로 떠올릴까? 소소한 집밥, 함께 나누는 이야기, 미국살이의 경험까지 행복한 추억으로 꺼내보길 바라본다.
<이새은 / 가정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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