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께서 할아버지 묏자리를 짚으셨다. 산에 나무하러 다니시며 보니까 쌓인 눈이 다른 곳보다 더 일찍 녹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 자리를 사돈 영감 묏자리로 추천하셨고 그래서 경북 안동의 외할아버지 집 앞산에 할아버지께서 누우셨다.
아버지 가셨을 때 공원묘지로 모시려고 했는데 아버지 친구분께서 ‘내한테 산이 있는데 와 공원묘지로 가노. 친구를 공원묘지에 둘 수는 없데이’하시며 막으셨다. 1980년대 경북 시골의 공원묘지라는 것이 지금과 달리 허접한 구석이 많았기에 친구분 뜻을 따라 그 산에 모셨다.
형제 중 하나의 삶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잘 풀리지 않았는데 ‘묏자리가 안 좋아서 그런가 싶다’는 얘기가 있어서 파묘를 한 후 화장했다. 가루는 할아버지 계신 안동의 그 산소 주위에 뿌렸다. 다시 30여 년이 흐른 후 어머니 가시고, 어머니도 화장을 해서 아버지 계시는 곳에 뿌렸다.
그런데 그 산으로 시의 외곽도로가 난다고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 묘소를 파해야하는 일이 생겼다. 할아버지 묘소를 파한다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지막 흔적도 사라진다는 뜻이다. 봉분은 없지만 그래도 할아버지 묘소에 가면 ‘여기가 아버지 어머니 계시는 곳’이라고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마저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던 11월의 어느 일요일 새벽에 이수익의 시 ‘결빙(結氷)의 아버지’를 만났다.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랑이/ 사이로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 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 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이 시에 나오는 몇 표현들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버린…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품 안의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이것은 세상 모든 아버지의 심정, 그리고 내 아버지의 심정이 아닌가.
그 새벽에 이 시를 들여다보다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국민학교 1학년을 마친 둘째 아들을 서울로 유학 보내신 아버지, 이제는 세상 그 어디에도 흔적을 찾을 수 없이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
김성식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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