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호황·한국 면세점 위기
▶ 외국보다 비싸고 명품에 집중
▶ 관광 늘었지만 매출은 제자리
▶ 한국 강점 살린 상품 확대 시급
▶ “입국장 인도장·면세한도 늘려야”
“한국 면세점은 물건 가짓수도 없고 너무 비싸네요. 둘러만 보고 나왔어요.”
17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시내 면세점에서 만난 미국인 A(51) 씨는 “똑같은 청바지가 뉴욕에서 80달러인데 한국에서는 120달러나 한다”며 “명품 매장도 종류가 많지 않고 너무 비싸서 그냥 나왔다”고 말했다. 이 면세점의 샤넬·구찌·에르메스 등 매장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거나 대기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반면 한국 화장품 브랜드 헤스킨 매장에는 중국인 10여 명이 파운데이션과 페이스 크림을 가득 담은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있었다. 헤스킨은 왕훙(중국 인플루언서)이 추천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다. 한국 패션 브랜드인 MLB·휠라 매장에도 중국인 관광객이 북적댔다.
명품 판매 및 중국인 보따리상(다이궁)에만 의존하던 한국 면세 업계가 존폐 위기에 몰린 가운데 일본 면세점처럼 현지에서만 살 수 있는 특화 상품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 면세점들은 다이궁에 팔기 쉬운 대기업 계열 화장품이나 명품에 의존하면서 새로운 브랜드와 기획 상품 발굴에 소홀했다는 게 유통 업계의 중론이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2023년 한국 관광객이 일본 면세점에서 산 물품 1위는 제과류(31.7%)였다. 2위 상비 의약품(20.9%), 3위 패션 잡화(16.9%) 순으로 나타났다. 값비싼 명품이나 시계·주얼리가 아닌 일본에서만 살 수 있는 상품이 환율 혜택으로 한국보다 가성비 있다고 여겨지면서 한국인들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면세 업계 관계자는 “한국 면세 업계가 명품 브랜드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면세점에서 명품을 구매하는 고객은 고액 자산가에 비해 가격에 민감하다”면서 “최근에는 엔저 효과를 보기 위해 한국 매장에서 구경한 후 일본에서 구매하는 고객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한국 면세 업계도 다이궁 의존도를 낮추는 한편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K뷰티·K푸드 등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상품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세계면세점에 따르면 한국 상품 매출 1위는 정관장과 아이코스로 과거와 비슷하지만 새롭게 뜨는 브랜드로 식품 중에서는 ‘딸기가 통째로 다크&화이트 초콜릿’, 주류는 ‘화요블랙53’가 순위에 올랐다.
반면 면세점에서 살 수 있는 명품 향수나 핸드크림 등 일명 ‘스몰 럭셔리’에 대한 수요는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명품 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의 글로벌 본사조차 젊은 고객을 확대할 수 있는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입점하는 것에 관심이 높다”고 귀띔했다.
면세점은 직매입 형태로 상품을 확보하는데 코로나19 이후 규모의 경제가 줄면서 재고관리 등 비용만 늘어나는 사업구조인 점도 실적 악화의 요인이 되고 있다. 면세점을 계열사로 둔 신세계백화점은 부산 센텀시티의 면세점을 뺀 자리에 스포츠 등 백화점 매장을 들이기로 했다. 백화점은 재고 부담이 적은 위·수탁 거래가 대다수여서 백화점을 통해 해외 관광객을 공략할 유인이 높은 것이다.
면세점 업계에서는 현재의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면세 한도를 올리고 입국장 인도장을 확대하는 등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간 면세 업계의 ‘큰손’이었던 중국인의 빈자리를 내국인 여행객으로 채우기 위해서다. 롯데면세점의 경우 2019년 중국인 고객의 비중이 73.2%에 달했지만 2024년에는 60.2%로 줄었으나 여전히 중국 고객 의존도가 높다.
한국 여행자의 입국 면세 한도가 800달러(약 116만 원)로 일본(20만 엔, 약 186만 원), 중국 하이난(10만 위안, 약 1,982만 원)에 비해 낮은 것 역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오른 데다 국민소득, 주변국의 면세 한도 등을 고려해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존에 중국인의 명품 소비에 의존했던 데서 벗어나 공간 디자인도 혁신하고 체험 요소를 강화하는 등 원점에서 면세 업계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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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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