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로 가기 위해 내가 사는 타코마 쪽에서 퓨앨럽을 지나가다 보면 작은 강을 가로 지르는 철길이 보인다. 1877년에 지어졌다는 이 풍경은 매우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윌크슨 탄광으로 알려진 곳에서 워싱턴주 남부의 타코마 시를 지나 이 석탄들은 샌프란시스코로 운반되었고 증기기관열차의 연료로 쓰였다고 한다.
1864년 에이브러햄 링컨은 오대호에서 워싱턴 주 퓨젯 사운드까지 건설되는 철도, 즉 북태평양철도(Northern Pacific Railway) 건설 헌장서에 서명을 하였다. 이는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대륙 횡단 철도로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거대한 사업은 도시의 확장과 물자의 교류 등 미국 경제 성장에 기여했을 뿐 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워싱턴 주에는 이 철도회사에 대한 역사관이 많이 있다. 내가 이 회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 곳에서 본 회사의 로고 때문이었다. 테두리에 Northern Pacific 회사 이름이 있고 가운데에는 누가 보아도 우리나라 태극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 백과에서 찾아보니 역시 태극기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세계 박람회에 처음 참가한 것은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의 일이다. 당시 한반도의 혼란한 주변 정세 속에서 ‘대조선’은 참가단장 정경원을 비롯 10명을 사절단으로 파견하였다. 특히 그 해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400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로 치루어졌다. 대조선 사절단은 도자기, 모시옷, 부채, 갑옷, 가마 등을 전시했고 궁중 악곡 <황풍악>을 연주하여 이목을 끌었다. 이후 조선에 돌아온 정경원단장이 당시 풍경을 고종에게 보고하는 장면이 <승정원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다시 철도회사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 때 북태평양철도 로고에 대한 디자인을 검토하던 수석 기술자였던 에드윈 헤리슨 메켄리가 1893년 시카코만국박람회에 게양되어 있던 태극문양을 보고 영감을 얻어 차용하였다는 내용이다. 그는 검정과 빨강으로 된 태극도안으로 디자인을 완성하였고 이후 북태평양철도 회사의 로고가 되었다.
예술에서 차용은 새로운 창작활동으로 인정받는다고 하니 뭐 그것을 따지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래도 1893년 급격한 세계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화를 추진하던 고종임금이 먼 이국 땅 미국에서 태극과 팔괘의 의미를 연구하여 이를 자신들 회사의 심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1882년 태극기 제작에 직접 참여하였던 고종임금께서 1897년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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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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