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마지막 월요일,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는 국가를 위해 싸우다 생명을 잃은 군인들을 기리는 날로, 본래 남북전쟁 중 희생된 북군 장병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었으나, 이후 미국이 겪은 모든 전쟁의 전몰자들을 추모하는 날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미국인들은 이 날, 성조기를 반기(半旗)로 내리고, 묘지를 방문하거나 헌화하며,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린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도 매년 6월 6일을 ‘현충일(顯忠日)’로 기념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비롯하여 독립운동, 국가 방위, 치안 유지, 재난 구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다 순국한 이들을 기리며,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과 각 지방 현충탑에서 엄숙한 추념식이 거행된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사이렌이 울리는 순간 온 국민은 일제히 묵념에 들어간다. 이 짧은 1분간의 정적 속에 우리는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된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 경제 발전, 민주주의, 안전한 일상은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수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이 흘린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진 결과물이지, 그들의 희생이 만든 오늘의 자유와 번영은 공짜가 아니었다. 미국은 독립전쟁, 남북전쟁, 제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까지 참전국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왔고,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서 목숨을 바쳤다.
한국 또한 일제강점기를 거쳐 독립을 쟁취하고, 6.25 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날만큼은 고개를 숙이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당신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쳐야 한다.
오늘날 ‘애국’이라는 말은 너무도 가볍게, 때로는 정치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진정한 애국이란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고, 현재의 책무를 감당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책임 있는 삶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애국은 전쟁터에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작은 선택, 일상의 성실함, 정의를 위한 외침, 공동체를 위한 배려, 나라를 위한 올바른 투표 등 모든 실천 속에 애국은 살아 숨쉴 것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군복무를 명예로 여기고, 참전 용사에게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고 말하는 문화는 단순한 예절이 아니다.
그들은 자유가 얼마나 고귀한 대가로 얻어진 것인지 알기에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젊은 세대에게도 계승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누가 기억하겠나?
우리의 후손들은 더욱 빠르고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보니, 국경의 개념은 약해지고, 글로벌 경쟁은 치열해지며, 가치관은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정체성과 정신이 아니겠는가!
정신은 조국을 사랑하고 국민을 아끼는 마음으로 우리 민족이 위기 때마다 되살아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이제는 총칼이 아닌, 지식과 기술, 문화와 인성, 연대와 소통으로 이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미국의 메모리얼데이와 한국의 현충일은 단지 죽은 자를 위한 ‘기념일’로 과거를 장식하는 날이 아니라, 과거의 희생을 감사히 기억하고 산 자에게 남겨진 사명과 각오의 날이다. 이러한 날이야말로 우리가 본래의 정신을 회복하고, 하나로 묶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날의 꽃은 무덤 위에만 피어서는 안 되며, 우리의 가슴과 일상에서도 피어나야 한다. 또한 우리가 정의롭고 성실하게, 공동체를 위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애국 애민은 오늘도 내일도 면면히 계속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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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화/전 성결대 학장·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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