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떤 일을 만났을 때 만족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찌 온전한 만족이 있으랴. 더 늦기 전에 유럽을 보자 하여 갔다 온 여행이 벌써 1년 전이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태리를 둘러보고 왔는데 정직하게 말하여 여행 후 감상은 “별로”였다. 미국인들이 유난히 유럽을 흠모하는 것은 그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과 같다.
한두 가지 볼거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유럽여행”이라는 조금쯤 설레는 타이틀에 비해 얻는 건 많지 않았다. 한국 관광의 핵심이 사찰이듯 유럽관광의 포인트는 성당과 박물관이라 하여 지나침이 없다.
그나마 스위스 융프라우 산정에서 6월의 눈을 맞았으니 다소의 보람이 있었다고나 할까. 이태리는 정말 성당 천지다. 바티칸을 위시해서 밀라노, 베니스 등에 깔린 게 성당이고 도시마다 널린 비좁은 골목길이 관광이었으니 단언하건데 대단한 여행은 아니었다. 그나마 지구가 얼마나 작은 덩어리인가를 새삼 느꼈다고나할까. 그러니 아주 헛일은 아니었다.
로마의 압권은 콜로세움인데 그토록 오랜 세월의 풍상 속에서도 역사의 잔해를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긴 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를 한번쯤 가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콜로세움을 보니 아테네 언덕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성채가 궁금해서였다.
관광객이란 어쩌면 바보들일지 모른다. 심지어 콜로세움이나 아크로폴리스 언덕은 허위의 도시라는 말까지 돌아다니고 있음에도 기를 쓰고들 갔다 오니 말이다.
관광객들의 허영을 위해 그 도시 주변과 언덕에 널려 있는 대리석 조각들에 숨겨진 진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다. 역사적 조각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 속에 남아있으리라고 생각했다는 게 처음부터 무리다. 관광객들이 오래전 도시가 붕괴하면서 무너져 내린 대리석 파편들을 너도나도 보물처럼 주워서 간직하고 떠난다니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며 그리스 업체들은 배꼽을 잡을 일이다. 믿거나 말거나 아크로폴리스 언덕 주변에서 아직도 발굴되는 대리석 조각들은 몇 개월마다 수마일 떨어진 채석장에서 트럭으로 실어와 뿌려댄다는 소문이다. 옛날 조각은 아니어도 그리스 제품인 건 확실하니까, 그나마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아무튼 이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보다 바보가 훨 많다. 그런데 그 많은 바보들은 쉽게 불행해 하고 쉽게 행복해 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그 행불행의 극단에 서기를 좋아한다. 예컨대 그렇게 유럽여행 타령을 하다가 갔다 왔으면 추억의 갈피에 넣어두면 될 일인데 불만으로 투덜거리니 인생에 만족이란 먼 신기루다.
우리는 백점의 행복을 추구하다가 90점에 실망한다. 80점이나 70점도 충분히 행복해 할 점수다. 과락에 해당하는 39점을 맞지 않고 41점으로 행복해 하는 사람도 상상보다 많다.
우리 인생은 그나마 괜찮은 불행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아야 마땅하다. 영악한 인간들을 위한 지혜 중 하나가 “위만 보지 말고 아래를 보라”고 하지 않는가. 인생의 삶이란 정말 별 거 아닌데도 지나치게 성공이나 행복에 목숨을 거는듯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실소(失笑)하고 넘어간 일이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화가 이중섭의 그림 하나를 한 달 넘게 거꾸로 걸었다가 바로 잡은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관람객중 누구 한 사람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고, 관객들은 그림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했을 것이다. 그나마 원래 그림이란 보는 사람의 것이니까.
이런 일은 의외로 우리들 주변에서 많이 일어난다. 세상일이란 딱 갈라서 행복과 불행, 만족과 불만족을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닥친 불행에 가슴 아파한다. 사실은 그보다 더 큰 불행이 올 수 있었는데 거기서 멈췄음을 감사할 일이다.
6월에 눈 내리는 융프라우 꼭대기에 갔다 온 행복보다는 거기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도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이 행복한 일일 수 있다. 그나마 지금도 그때를 말하며 두 사람은 웃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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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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