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6월 3일 서울은 거리로 뛰쳐나온 대학생들로 넘쳐났다. 김종필 공화당 의장이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을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자 서울대, 연대, 고대 등 1만2천여 학생들이 중앙청으로 몰려들어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1965년 6월 22일 3억 달러의 무상 자금을 받는 대가로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한일 관계는 그후 30여년이 지난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며 다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동안 일제 잔재 청산 및 왜색 문화 배격을 위해 금지됐던 일본의 대중 문화를 단계적으로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그 때도 일본 저질 문화 유입으로 한국 고유 문화가 훼손되고 국민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반대 여론이 높았으나 이제는 우리 사회도 이를 수용할 정도로 성숙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자세라는 이유로 이를 단행했다.
그 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당초 우려와는 달리 왜색 문화가 한국 사회에 침투하는 대신 오히려 K 팝을 비롯한 한류가 일본을 휩쓸고 있다.
달라진 한일 관계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의 하나가 급증하고 있는 한국인의 일본 방문이다. 올 5월 한달간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수는 369만명인데 이 중 한국인은 82만명으로 1위다. 올 들어 5월까지 기록은 405만명인데 이대로 가면 역대 최다였던 작년의 882만명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많은 한국인이 일본에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은 최고의 관광지다. 첫째는 안전이다. 일본의 재소자 숫자는 인구 10만명당 37명으로 미국 519명의 1/10에도 못 미친다. 살인 사건은 미국의 1/10, 절도는 1/100, 총기 살인은 1만6천대 38건으로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둘째는 싼 가격이다. 요즘 LA에서는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려 해도 17~18달러에 택스와 팁, 발레 파킹까지 하면 27달러가 들지만 일본에서는 수십년된 유명 노포에서 끓여주는 라멘을 1천엔 안팎으로 먹을 수 있다. 지금 환율로 6달러가 조금 넘는다. 한국 냉면 값도 이제는 1만5천원이 넘으니 한국과 비교해도 반값인 셈이다.
이렇게 된 것은 일본은 30년 동안 물가가 거의 오르지 않은데다 환율은 과거 달러당 80엔 하던 것이 요즘은 150엔에 가깝기 때문이다. 비행기 타고 일본에서 골프 치고 오는 것이 한국보다 싸다는 게 빈말이 아니다.
거기다 일본인들은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무척 친절하다. 음식도 입맛에 맞고 볼 것도 많고 어디를 가도 깨끗하다. 여행자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셈이다.
물론 지나치게 규칙을 잘 지키고 수십년 동안 똑 같은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한국인들 눈에는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입국 카드를 쓸 때 반드시 자기가 묵는 호텔 주소를 쓰게 하는 점이다. 요즘 인터넷에 이름만 치면 주소는 바로 나오는데도 이를 적지 않으면 입국이 되지 않는다. 옛날 인터넷 이전 시절 방문자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만든 규칙이 아직까지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 전국이 전산망으로 연결돼 어디서나 공문서를 뗄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가 직접 신청하거나 우편으로 요청해야 하는데 빨라도 수주, 때로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또 한가지 한국과 다른 것은 길거리에 한국에서 그 흔한 감시 카메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교통 경찰도 보이지 않는데 법규를 위반하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일본 사람들은 원래 규칙을 잘 지키는데다 한번 과속으로 걸리면 벌금으로 한달치 월급을 내야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이런 질서 의식 때문에 운전석이 오른 쪽에 있는 차이에도 불구, 차를 빌려 운전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난폭 운전을 하는 사람도, 끼어들기를 하는 사람도, 수시로 경적을 울려대는 사람도 너무 없어 이상할 정도다.
양국 국민들의 방문과 문화 교류가 늘면서 이들이 가졌던 편견도 서서히 깨지고 있다. 한일 양국 가수가 출연해 한국인은 일본말로 엔카를, 일본인은 한국말로 트롯을 부르는 ‘한일톱텐쇼’ 같은 프로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 그 한 예일 것이다.
지난 22일은 한일 수교 60주년 기념일이었다. 아직도 양국의 불행한 과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남아 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질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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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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