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숲에는 비가 두 번 내린다. 처음 내리는 비는 강우다. 지상에 낙하한 비는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계곡을 타고 평지로 내려간다. 두 번째 내리는 비는 강우가 아니다. 그 비는 방출이다.
숲의 일부분인 나무 이파리와 뿌리, 그루터기 주변의 이끼가 저장했던 빗물을 서서히 방출함으로 이루어지는 발출작용이 두 번째 비다. 울창한 숲은 강수량을 조절하는 거대한 저수지다.
아무리 거대한 폭우가 쏟아져도 살아있는 숲은 스펀지처럼 빗물을 깊이 빨아들여 보존한다. 그리고 날이 맑게 개이면 그때부터 서서히 발출하여 아래로 흘려보내 목마른 대지를 부요하게 살려낸다. (페터 볼레벤의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 중에서)
산 아래 마을의 토양이 매 마르지 않으려면 숲이 필요하다. 인간 사회가 매 마르지 않으려면 숲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벤 자카이(Ben Zakkai)는 예루살렘이 로마의 디도 장군에게 함락 당할 때 야브네 아카데미(Yavneh Academy) 설립을 청원한 랍비로 유명하다.
자카이의 의외의 청원을 받은 디도 장군은 말했다. “나라가 곧 망할 텐데 학교 하나 세워 어쩌자는 것인가.” 예루살렘 성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기세가 등등했던 디도 장군은 단순하게 생각했고 그 자리에서 자카이에게 학교 설립을 허락했다.
자카이는 불타는 예루살렘 성을 등지고 지중해 연안의 작은 마을 야브네로 들어갔다. 거기서 회심(會心)의 토라 아카데미를 세웠다. 망국의 소식을 들은 강호의 젊은 인재들이 해변의 작은 마을에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1948년 이스라엘에게 독립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야브네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이 모여 이스라엘 건국의 초석이 되었다. 랍비 자카이는 이스라엘 민족을 회생시킨 영적 선견자였고 큰 인간 숲이었다.
로마 황제 칼리굴라와 네로의 은, 금의 낭비벽과 사치스런 목욕문화는 유명했다. 스페인의 은 광산은 로마 황제의 낭비벽을 채워주는 공급원이었다. 2세기 말이 되자 땔감 부족으로 스페인 은광이 줄줄이 폐광했다.
하지만 로마시내의 목욕탕 물은 식지 않았고 숲의 나무를 계속 베어내었다. 산림이 사라지자 땅은 영양분을 잃고 황폐화되었다. 농산물 소출은 급감하고 로마는 빈곤국이 되었다. 인간 계대(繼代)의 책임감과 숲 황폐화의 교차에 따라 이스라엘과 로마의 흥망성쇠는 서로 극명하게 엇갈렸다.
숲은 언제나 빛나는 후대를 바라본다. 숲은 후대를 위한 축복의 공급자다. 깊은 숲을 품고 있는 생태계는 풍요하다.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다. 한 여행자가 잣나무 농장에서 묘목을 심고 있는 유대인 랍비에게 물었다. “이 잣나무가 언제 열매를 맺게 될까요?” “글쎄, 한 50년 후 쯤 되겠지.” 잣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까지 랍비가 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여행자가 다시 물었다.
“랍비께서 이 열매를 따서 드실 때까지 살 수 있을까요?” “물론 아니지, 나는 후손들을 위하여 이 나무를 심고 있는 것이라네. 내가 이 세상에 왔을 때 우리 조상들도 이 잣나무를 심었거든.”
누가 깊은 숲 같은 사람인가. 빛나는 후대를 바라보고 잣나무를 심는 랍비처럼, 불우한 릇과 나오미를 환대해준 보아스처럼 자신이 죽은 후에도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다.
릇기 멘 마지막에 보면 다윗이 혼자 다윗이 되지 않았음을 족보로 증언하고 있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당신은 리더인가. 깊은 숲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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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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