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렌지카운티의 시거스트롬 홀에서 마이애미시티 발레의 ‘백조의 호수’ 공연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뮤직센터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보스턴 발레의 ‘백조의 호수’가 공연된다.
‘백조의 호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공연을 보았건 안 보았건 ‘백조의 호수’는 발레의 대명사요, 발레리나는 짧은 튀튀를 입고 머리에 흰 깃털을 붙인 백조 모습으로 이미지가 굳어진지 오래다.
150년전 차이코프스키의 음악과 함께 탄생한 이래 세계 모든 발레단이 가장 자주 공연하는 작품, 가장 중요해서 시즌 오프닝 또는 피날레 공연으로 선택되는 작품이 ‘백조의 호수’다. 지금 6월말에 LA와 OC의 가장 큰 공연장이 잇달아 이를 무대에 올리는 것도 2024-25 시즌의 피날레로 아껴뒀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아는 ‘백조의 호수’를 보고 또 보는 이유는 고전발레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원형은 변치 않되 시대에 따라 자유로운 해석과 질문을 낳고 감상의 기준도 달라지는 클래식, 여기에 극적인 스토리와 차이코프스키의 아름다운 음악이 더해져 불멸의 명작이 되었다.
‘백조의 호수’ 스토리는 동화와 같지만 결말에 따라 잔혹동화가 되기도 한다. 왕자 지그프리트는 호숫가에서 한 무리의 백조와 함께 있는 아름다운 오데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사악한 마법사의 저주로 낮에는 백조가 되고 밤에만 인간으로 돌아오는 공주, 이 저주는 순결한 남자가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때만 깨질 수 있다.
한편 왕궁에서는 왕자비 간택을 위한 무도회가 열리고 여기에 마법사가 오데트와 똑같이 변신한 딸 오딜을 데리고 나타나 왕자를 유혹하게 한다. 계략에 걸린 왕자가 오딜에게 결혼을 맹세하자 상심한 오데트는 호수에 뛰어들려하고, 뒤늦게 왕자가 용서를 빌지만 그는 오딜과의 결혼약속을 지켜야한다. 결국 죽음을 택하는 오데트, 곁에 있던 왕자도 함께 호수로 몸을 던지자 그 사랑의 힘으로 저주가 깨지면서 둘은 하나가 되어 승천한다.
‘백조의 호수’는 안무가마다 스토리 전개가 조금씩 다른데, 특히 4막의 결말에서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진다. 1877년 오리지널 버전은 왕자가 마법사를 무찌르고 마법이 깨지면서 두 사람이 결합하는 해피 엔딩이다. 하지만 더 보편적인 것은 1895년 마린스키 극장의 공동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가 만든 것으로, 공주와 왕자가 함께 죽으면서 마법이 깨지는 버전이다.
이외에도 공주는 죽고 왕자만 남는 엔딩, 아무도 죽지 않지만 오데트는 영원히 백조가 되는 결말, 왕자와 마법사가 싸우다 둘다 죽고 오데트만 남는 결말, 심지어 왕자가 자포자기하여 오딜과 결혼하고 그 광경을 마법사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결말도 시도됐다.
그뿐 아니라 유명안무가 매튜 본의 것처럼 백조가 남성들인 설정도 있고, 왕자의 심리묘사나 악역 로트바르트가 강조되는 버전 등 역대 발레 중 ‘백조의 호수’만큼 수많은 해석을 낳은 작품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한 발레리나가 춤추는 백조와 흑조의 표현이다. 영화 ‘블랙 스완’에서 나탈리 포트만은 두 캐릭터에 대한 잊을 수 없는 명연기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순수한 백조로서는 최고이지만 요부 같은 흑조로서는 끼가 부족한 발레리나가 완벽에 대한 강박과 집착으로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완전한 흑조로 변해가는 과정을 탁월한 심리드라마로 다뤘다.
선과 악을 오가는 고난도 내면연기는 물론, 체력적으로도 엄청난 도전인 만큼 오데트/오딜 역은 발레단에서 주역데뷔를 위한 필수코스로 여겨진다.
특히 3막에서 흑조가 왕자를 유혹하기 위해 추는 32회 푸에테(Fouette, 연속회전)는 관객들이 가장 기다리는 장면이고, 2막에서 네 명의 발레리나가 손을 엇갈리게 잡고 일사불란한 고갯짓으로 우아하게 추는 4인무 역시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마이애미시티 발레와 보스턴 발레의 ‘백조의 호수’는 둘다 전통의 정수를 복원한 버전으로, 각기 2022년과 2014년 초연 당시 클래식 감성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된 최고의 무대라는 찬사를 받았다. 미국 굴지의 보스턴 발레가 LA에서 공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코 니시넨(Mikko Nissinen) 예술감독이 연출한 섬세하고 우아한 프로덕션, 무엇보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이 라이브 오케스트라로 연주되어서 기대가 크다. 26~29일 5회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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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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