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또는: 나는 어떻게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나’(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는 미소간 핵전쟁 발발의 위기에서 미국대통령과 군 수뇌부의 좌충우돌 탁상공론을 신랄하고 통렬하게 풍자한 블랙코미디다.
핵전쟁이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얼마나 한심하고 우스꽝스런 상황과 대사가 많이 나오는지 시종 킬킬거리게 되는데, 단지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모든 위대한 영화들이 그렇듯 시대를 관통하는 인류의 호전성과 어리석음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1964년 제작된 이 영화는 미영화협회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화 중에서 26위, 100대 코미디영화 3위에 올라있다.
이야기는 음모론에 사로잡힌 미 공군장성 잭 리퍼가 수소폭탄을 탑재한 34대의 B-52 폭격기를 소련으로 출격시키면서 시작된다. 그는 대통령의 권한을 건너뛰는 ‘플랜 R’을 발동하는데, 이것은 적의 급습과 같은 비상시엔 낮은 지위의 사령관도 핵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허용한 작전계획이다. 플랜 R이 발동되면 전 폭격기 편대의 보안비밀코드가 변경되고, 이 암호 없이는 모든 통신이 차단되기 때문에 결국 취소가 불가능해진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고, 여기에는 모든 각료와 군 참모들은 물론 핵폭탄 전문가인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그리고 소련 대사까지 호출돼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호전광인 터지슨 장군은 이참에 아예 소련을 전면공격하자고 날뛴다. 미국도 핵 공격을 받겠지만 선제적으로 소련의 핵시설을 90%이상 무력화하면 ‘2,000만명 정도만’ 희생시키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소련대사는 만일 소련이 핵 공격을 당하면 컴퓨터와 연결된 ‘운명의 날 기계’(Doomsday Machine)가 자동 폭발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전멸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과연 소련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미 폭격기들을 멈출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전 세계가 파멸로 치달을 것인지,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과 스릴이 더해간다.
그런데 애초에 핵전쟁을 일으킨 음모론은 무엇이었을까? 리퍼 장군은 ‘빨갱이’를 혐오하는 극우파 인종차별주의자로서 “공산주의자들이 수돗물에 불소를 타서 미국인의 ‘신성한 체액’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과대망상에 따라 행동한 것이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가? 바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장관이 지난 대선 때부터 주장해온 이야기다. 케네디 장관은 “불소는 산업폐기물이며 관절염, 골암, 신경발달장애, IQ저하 등의 원인”이라면서 수돗물 불소화 중단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상수도에 미량의 불소를 첨가하는 수돗물 불소화는 충치예방 등 구강건강효과가 크기 때문에 1951년부터 미 정부가 권고해온 보건정책이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를 20세기 최고의 10대 공중보건 조치 중 하나로 평가했고, 미국인의 3분의 2가 불소 처리된 수돗물을 공급받고 있다. 이런 음모론이 70년 전에도 존재했다는 사실과 이를 영화의 소재로 다룬 큐브릭 감독의 혜안이 놀랍다.
올해는 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이 되는 해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한 5월8일 종전되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8월15일 태평양전쟁이 끝났다. 덕분에 우리나라도 해방이 되었고 눈부시게 발전하여 세계가 부러워하는 문화 선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종전은 원폭 투하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이루어졌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꼬마’ 원자폭탄이, 3일 후인 8월9일 나가사키에는 ‘뚱보’ 원폭이 떨어져 무려 22만명이 생명을 잃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그리고 현재까지는 마지막으로 사용된 핵무기였다.
이후 원폭보다 파괴력이 수천 배에 높은 수소폭탄이 개발되었고, 오늘날 세계가 보유한 핵무기는 무려 1만2,300개에 달한다. 러시아(5,500개)와 미국(5,200개)이 전체의 90%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중국(600개), 프랑스, 영국,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북한도 50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1945년 이후 아직까지 한번도 핵폭탄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가공할 위력을 전 세계가 두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핵 보유의 경쟁은 핵사용 억제를 불러오는 효과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핵전쟁은 전략적 이유보다 우발적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처럼 인간의 실수나 오해, 혹은 한 미치광이의 허세로도 이 파괴적인 무기의 사용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장 빈번한 핵 안보의 위협은 오작동한 경보와 컴퓨터시스템의 고장 또는 오류로,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최소 10차례 이상 오경보가 내려져 전군이 비상사태에 돌입한 적이 있다. 인공지능(AI)의 군사적 활용과 허위정보의 확산도 위험요인이다. 군에서도 AI의 사용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인데, 소셜미디어에 넘쳐나는 허위정보와 조작된 사진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전쟁의 위협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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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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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이상 양심불량 썪은 영혼 들 의 거짖 무지 무능이 핵 보다 난 더 무섶다고 생각 되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