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첸조 벨리니가 남긴 오페라 청교도(I Puritani) 의 1막에 나오는 아리아로서 남미 정글에 오페라 하우스를 짓겠다는 어느 광인을 소재로한 영화 ‘피츠카랄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오페라가 뭐길래 배를 산으로 끌어 올리고 정글에서 벌레, 독충에 물려 다리가 잘리고 비행기 추락으로 여러 명이 죽어가면서 만든 정말 뭐(?)같은 영화… 감독도 미치고 배우도 미치고 영화의 내용조차 미쳐있는 이 영화는 배우 브레드 피트가 우리세대의 가장 위대한 영화 첫 순위로 꼽은 작품이라고도 한다. 20여년 전 영화를 전공했던 같은 방 K기자는 미친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Werner Herzog)의 이야기와 함께 영화 ‘피츠카랄도’의 비데오를 빌려준 적이 있었다. 이 영화는 촬영 도중 주인공 (배우) 이 사망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찍은 영화로도 유명하다. 2023년 헤어초크 감독이 버클리를 방문하여 ‘헤어초크 영화제’를 연 적이 있었는데 그당시 헤어초크는 ‘피츠카랄도’야말로 인간의 극한에 도전하는 생존게임이나 다름없는 자세로 임한 작품’이었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길다면 긴 인생에서 영화의 한 장면이나 오페라의 아리아 하나가 삶에 주는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영화 한 작품 만들어 보겠다고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물론 수 백 편의 무의미한 드라마나 시간 때우기 오락 영화들 보다는 예술성있는 명화의 한
장면이나 감동적인 오페라 아리아 한 작품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정상적인 일반인들에게는 정말 실감이 되지 않는 일이다. 무언가에 미쳐서 산다는 것…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사실 예술가들의 광기가 있기에 인생이란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심을 느낄 수 있는 가치있는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짧지만 무언가에 진심을 다해 불꽃처럼 살다 간 사람들에 대해 대중들이 열광하는 것도 이 때문이겠지만 34세로 불꽃처럼 살다죽은 벨리니도 그렇지만 영화 한편 남겨보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스스로도 목숨을 건 모험을 한 영화감독도 흔치 않다.
그러면 영화감독 헤어초크가 선택한 오페라의 한 장면 A te, o cara는 어떤 노래이기에 … ? 이 노래는 두말할 나위없이 모든 테너들이 사랑할만한 모든 것을 갖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언뜻 광적인 영화에 나오는 오페라 아리아이기에 섬뜩할지 모른다는 선입관이 있을 수 있지만 헤어초크가 이 노래를 선택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왜 ? 노래가 이세상의 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래이지만 또한 삶의 저편 피안에서 들려오는 선율을 담고 있는 노래. 선율이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것을 미치지 않고는 잘 들을 수도 들려오지도 없는 선율이기도 했다. 사실 선율이 아름다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늘 영혼이 불타고 있는 천재들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찰라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고나할까. 사실 아리아A te, o cara 에 대한 내용이나 오페라 ‘청교도’에 대해서 더이상 구차하게 이러쿵저러쿵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여주인공이 (사랑과 현실의 괴리로)끝없이 미쳐간다는 내용인데 노래 만큼은 비할바 없이 아름답다. 테너 아리아에 속하는A te, o cara는유튜브 등에도 많이 나와있다. (영화 피츠카랄도 마지막 장면 포함)
오페라 아리아도 멋있지만 A te, o cara 를 멋지게 영화의 한 장면에 삽입한 헤어초크 감독도 참 대단한 감독이었다. 헤어초크는 2009년 타임지로부터 가장 영향력있는 100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영화인들의 우상이다. 헤어초크 감독은 영화를 철학적,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예술로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를 예술적으로 승화, 때로는 광기의 예술가로서, 때로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의 예술가로서 수많은 영화 지망생들에게 칭송받기도 했다.
1942년 뮌헨에서 태어난 헤어초크는 18세에 모든 것을 던지고 아프리카 수단으로 여행길에 오른다. 세계 각지를 방황하던 헤어초크는 다시 뮌헨으로 돌아와 철강소 등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첫 단편 ‘헤라클레스( Herakles)’를 만들어 영화에 대한 야망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미국 피츠버그로 유학을 떠난 헤어초크는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총기밀수에 관여하기도 했으며, 68년에 만든 첫 장편 ‘생명의 징후( Lebenszeichen)’ 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고 71년 ‘난쟁이도 작게 시작했다’, ‘파타 모르가나’를 거쳐 72년 ‘아귀레, 신의 분노’로 독일의 새 시네마의 기수로 당당히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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