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하늘은 가을빛을 담고 있다. 낯익는 한글활자 간판이 유달리 많은 Flushibg Northern Blvd. 를 달리며 이민 초기의 기억이 떠오른다.
1980년도 초기 태평양을 건너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미국땅에 도착하고 보니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도 떠나온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더 짙었다.
도착 한 곳이 Washington 에서 가까운 Maryland 외진 곳이고 보니 더욱 그랬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조국의 언어와 문화가 담긴 한글책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맞닥드린 현실은 단순히 책 한권을 구하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아마도 고단한 삶 가운데 뿌리를 잃지 않으려는 의미도 포함되었던 것 같다.
새로운 정착의 어려움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도 있었지만 모국의 한글문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 이전에 그리운 고국과의 연결고리였고 마음의 안식처였던 것 같다.
그 당시 내가 거주했던 워싱턴은 다문화의 인식이 부족했던 시기였기에 소수 이민자들을 위한 정보 구비는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당시 뿌리 내리기 힘든 형편에서 어렵게 구해진 애틋한 책 한 권을 통해 느끼는 위로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소중한 체험이었다.
단순히 불편함 이라기 보다 그리운 고국 문화와의 단절에 대한 불안감도 컸기 때문이었다.
그 후 대도시 뉴욕으로 이사하며 이전의 갈증이 조금은 해갈되었다. 아이가 국민 학교에 입학하던 날 학교 행사에서 불려지는 미국 애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를 들으며 몰래 눈물 닦던 기억이 난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아타까움 때문이었던 것같다. 생활 터전이 점점 자리잡혀가며 텅빈 책꽂이를 채우기 위해 틈틈히 쓰고 읽고 하며 못다한 한(?)을 메우며 지냈다.
어느날 문학동아리의 봄소풍에 참여하며 회원들의 구디백에 소중했던 책을 두 세 세권씩 넣어 선물 하며 스스로 택한 여유로움에 감사하기도 했다.
오늘날은 인터넷의 발달과 한류의 영향으로 전 세계 어디서나 한국 책을 쉽게 접할 수 있고 클릭 한 번이면 최신 소설과 잡지를 전자책으로 읽을 수가 있다.
풍요로운 지금의 환경 속에서 이민 초기에 한글책 한 권을 찾아 헤매던 간절함과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경험은 아마도 낯선 땅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분투했던 이민자들의 공통점 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미주한인 사회의 풍성해진 한국문화의 이면에는 모국의 정체성을 지키며 토양 일구기 위한 이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시린 바람 속에 힘든 여정 이었지만 먼 그 시절의 애틋함을 기억하며 늦으나마 지난해에 시집 “바람 불어도 좋은날” 을 발간했다.
모국의 발전하는 문화에 감사하며 그리고 사랑하며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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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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