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율 주행 격전지’ 텍사스 오스틴
▶ 24시간 운행하는 ‘로보택시’ 도시 누벼
▶ 알파벳 자회사 웨이모, 상용화 가장 앞서
▶ 테슬라도 차량 적지만 서비스 시동 걸어
▶ 지역주민 만족도 높고 관광객들도 애용
▶ “뛰어난 기술로 불편하다고 느낀적 없어”
▶ ‘자율주행 수도’로 불리우는 오스틴시
▶ 신기술에 관대한 텍사스 주법 영향받아
▶ 악천후땐 주행 금지·화재 긴급 연락망 등
▶ 시는 만일의 상황 대비한 안전 태세 갖춰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맛집과 쇼핑몰이 즐비한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의 콩그레스 애비뉴는 밤이 되면 거대한 자율주행 차량 시험장으로 변모한다. 사람이 운행하는 택시는 낮에 비해 확 줄지만 운전자 없이 24시간 운행 가능한 자율주행 택시(로보택시)는 그대로 남아 밤늦게 귀가하는 승객을 태우고 거리를 질주하기 때문이다. 고깔 모양의 센서를 장착한 상용 로보택시 웨이모를 비롯해 테슬라의 로보택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자율주행차 죽스(Zoox), 그리고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를 플랫폼으로 사용하는 AV라이드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22일(현지시간) 오후 9시 30분부터 1시간 반가량 취재하는 동안 승객을 태운 웨이모는 1분에 한두 대꼴로 모습을 드러냈고, 인간 감독자를 태운 채 시험주행 중인 자율주행 차량도 50대는 족히 지나갔다.
▲ 탑승객들 “고난도 자율주행 기술에 감탄”로보택시들은 저마다 스스로 핸들을 돌리며 고난도 주행실력을 뽐냈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의 자회사인 웨이모는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상용화에 들어간 로보택시다. 이날도 붐비는 시내를 분주히 오가며 승객을 실어나르는 웨이모를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우회전 깜빡이를 켠 채 기자가 횡단보도 건너기를 기다리던 웨이모는 보행자와 거리가 30㎝가량 벌어지자 곧장 핸들을 틀더니 참을성 없는 운전자처럼 속도를 높이며 빠져나갔다.
웨이모에 탑승해 보니 전후방 차량과의 거리도 도로 위 여느 차량과 비슷했고, 신호가 바뀔 땐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등 일반 택시와 비슷했다. 비어있는 운전석 옆자리 조수석에 탑승한 그렉은 “어제 우버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자율주행차 선호’를 누른 뒤 우버를 호출할 때마다 웨이모가 온다”면서 뒷좌석에 탄 아내를 향해 “나보다 운전을 잘하는 것 같지?”라고 웃으며 말했다.
테슬라의 로보택시는 수요에 비해 차량이 적어 오스틴에서 아직 탑승하기 쉽지 않다. 테슬라는 6월 이 지역에서 서비스를 개시한 뒤 인플루언서 등 소수의 승객만 태우다 이달 3일부터 일반 대중에게 탑승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다수는 ‘대기자’ 목록에 올라있다. 기자도 이달 3일 앱에 생성된 ‘대기’ 버튼을 누르고 수시로 앱을 확인했지만 20일이 다 되도록 호출 버튼은 여전히 활성화되지 않았다.
오후 10시30분. 이날 처음 발견한 테슬라의 로보택시에서 내린 존과 필립은 “이달 3일 대기를 걸어뒀는데 오늘 탑승 버튼이 활성화됐다”고 자랑했다. 존은 “승차감이 아주 좋다”며 “골목에서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왔는데 차량이 즉각 멈춰서는 걸 보고 이 기술을 더 신뢰하게 됐다”고 했다. 자신은 ‘탑승 대기자’라 존의 계정으로 같이 타볼 수 있었다는 필립은 “여섯 블록을 탔는데 단돈 2달러밖에 안 냈다”며 “상용화되면 가격 경쟁력을 갖춘 데다 승차감까지 좋은 테슬라의 로보택시가 1등 웨이모를 능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운전석을 아예 없앤 채 4명이 마주 보고 앉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밝힌 죽스와 올해 말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상용화를 목표로 오스틴에서 시범운영 중인 AV라이드의 운전석이나 조수석에는 감독자가 앉아 차량의 주행을 살피고 있었다. 로보택시를 운행하기 위해선 ①테스트 ②매핑 ③시범운영 ④상용화 등 단계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죽스는 아직 ‘연습면허’ 격인 시범운영 단계, AV라이드는 테스트 단계인 까닭에 직원의 탑승이 필수다.
▲ 오스틴이 자율주행차 격전지 된 배경이처럼 오스틴이 미국에서 ‘자율주행 수도’로 자리매김한 건 신기술에 관대하고 통일된 법제도 덕분이다. 텍사스주(州) 교통부(TxDOT)는 2019년 커넥티드 자율주행차 태스크포스(TF)를 설립하며 ‘자율주행 시험단지’로서의 제도적 기반을 다졌고, 주법(SB2205)과 텍사스 교통법에 따라 오스틴, 댈러스 등 시(市) 당국은 별도의 규제를 할 수 없도록 정했다.
23일 오스틴시 소재 AV라이드 본사에서 만난 앤톤 슁가레브 AV라이드 대외협력 총괄은 “텍사스 주법은 자율주행차 회사들에 매우 호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라며 “텍사스주립대에서 배출되는 기술 인재들까지 있어 본사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율리아 쉬베이코 커뮤니케이션 총괄도 “오스틴이나 댈러스, 휴스턴 등 도시는 달라도 같은 텍사스주 안에서는 규제가 동일해 사업영역을 확장하기 용이한 점도 큰 장점”이라며 “주법은 물론 서로 다른 시 규제를 모두 따라야 하는 캘리포니아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규제가 관대하다고 해서 로보택시의 안전 책임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텍사스에선 이달 1일 로보택시가 없던 시절 마련된 교통법규 중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을 손질한 법이 발효됐는데, 이는 로보택시에도 법칙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법이었다. 기존 주법은 교통법규 위반 시 현장에서 ‘운전자’가 교통위반 서류에 서명을 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웨이모의 경우 승객만 타고 있고 시범운영 중인 다른 로보택시들엔 감독자가 조수석에 앉아 있어 불법주차나 교통법규를 위반해도 범칙금을 부과할 수 없었다. 새 법은 조수석에 앉은 ‘감독자’ 또는 로보택시 회사가 서명을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슁가레브는 “쉽게 말해 로보택시에도 ‘딱지 뗄 수 있게 하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 주는 법제 정비, 시는 안전 담당주정부가 법규를 마련했다면 안전을 책임지는 건 시(市)의 몫이다. 브래드 세색 오스틴시 공공정보 선임 전문가는 “오스틴시는 자율주행차를 직접 규제할 수 없으니, 안전한 환경을 만들고 비상시에 대비해 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설명했다. 세색은 지난 18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오스틴은 소방국·경찰국·공항 등 여러 시 부서로 구성된 ‘자율주행차 안전 실무그룹’을 꾸려 안전 문제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며 “실무그룹은 자율주행 기업들과 협력해 지역 교통망 정보를 제공하고 안전한 운행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6월 테슬라 로보택시가 시범운영을 신청한 뒤 소방·경찰 인력 등 100명을 투입해 사고 대비 훈련을 했고, 다음달 초에는 죽스 운행 대비 훈련이 예정돼 있다.
▲ 사고 정보는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시는 만일의 상황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도로 주행하는 로보택시들 사이로 정찰 중인 경찰차 여러 대가 눈에 띄었다. 주행을 감시하는 한편 사고 발생 시 재빨리 대응해 시민들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서다. 실무그룹은 화재 발생 시 긴급 연락망을 활용해 10분 이내에 사고 정보를 공유하고, 열에 취약한 전기차로 운행하는 로보택시가 해당 지역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한다. 또 폭우나 홍수, 우박 등 자율주행차에 손상을 가할 수 있는 악천후 예보 시 로보택시의 도로주행을 금지한다.
실무그룹 소속 소방팀장인 26년 경력의 구조대원 매슈 맥일러니는 이제 화재 대신 자율주행 차량 사고에 하나부터 열까지 대비하고 있었다. 23일 오스틴시의 북서쪽에 위치한 슈타이너 랜치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그는 “실무그룹은 물리적 사고에는 다각도로 대비한 상태”라며 “자율주행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사고 사례를 축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율주행 차량 관련 소논문과 자율주행차 회사에 건네는 안내용 서류뭉치를 잔뜩 챙겨온 그는 “몇 달 전만 해도 골프공 만한 우박을 맞은 자율주행차들이 ‘사고가 났다’고 인식해 길 한가운데 멈춰서 버렸고, 차량 통행을 위해 우리가 직접 옮겨야 했다”며 “도로가 침수됐을 때도 차량이 침수상황을 인식하지 못해 주행을 계속하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다음 안건으로 로보택시 서버가 해킹을 당했을 때 실무그룹이 어떻게 대응할지 다루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 덕분일까. 이 지역 주민들은 자율주행 차량 때문에 특별히 불편을 느끼진 않는다고 말한다. 오스틴 주민인 한스는 “매일 옆 차선이나 내 차 앞뒤로 로보택시가 운전하는 걸 본다. 로보택시 기술 탓에 불편을 느끼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캔틴도 “관광객들이 여기 오면 관광코스로 로보택시를 타고 있다”며 로보택시가 오스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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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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