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는 화염에 휩싸였다. 뒤이어 28만의 미군을 포함한 40만 대군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라크 전이 시작된 후 불과 20일만인 4월 9일 바그다드는 함락됐다.
5월 1일에는 군 경력이라고는 텍사스와 앨러바마의 주 방위군이 전부였던 조지 W 부시는 스스로 전투기를 몰고 샌디에고 인근 해상에 있던 에이브러험 링컨 항공모함에 착륙해 주요 전투의 종식을 선언했다. 항모에는 ‘임무 완수’(Mission Accomplished)라는 대대적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승리의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사담이 사라진 후 이라크는 권력 진공 상태에서 내전에 빠져 들었다. 억눌려 있던 다수 시아파 세력이 준동하고 극렬 회교 조직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4천500명의 미군이 사망하고 8만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2011년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할 때까지 쏟아부은 돈은 2조에서 3조 달러로 추산되는데 문제는 이런 천문학적인 돈을 들이고도 성과라고 내세울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넘도록 이라크 전쟁을 거론하는 사람은 없다. 기억하기조차 싫은 부끄러운 역사가 된 것이다.
이 전쟁은 미국 정치 판에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정치 명문 부시가와 전통적 공화당 지도부의 몰락이 그것이다. 도널드를 중심으로 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이 공화당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16년 대선에서 이라크 전을 주도한 부시와 네오콘을 가장 격렬하게 비판한 것이 도널드였다.
외국과의 전쟁과 ‘국가 재건’을 비판하고 미국 국내 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을 공언해온 도널드가 전쟁판에 뛰어들었다. 지난 주말 미국 특공대는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를 공습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마약 범죄 혐의로 체포해 뉴욕으로 압송했다.
도널드는 차기 정권 이양 때까지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통치하겠다며 제2의 군사 작전이나 미군 주둔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가 차기 정권을 이끌게 될 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작년 대선에서 야권의 압승을 이끌어내고 베네수엘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공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국민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배제했다. 마차도는 평화상을 받으면서 이 상은 도널드가 받을 자격이 있다고까지 말하며 그의 환심을 사려 했던 인물이다.
도널드는 베네수엘라의 통치를 말하면서도 국민들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석유를 도둑질해갔고 이를 되찾겠다는 주장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지금까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는 마두로를 대신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델시 로드리게스를 조종해 베네수엘라를 대리 통치할 계획인 것 같다.
도널드는 손쉬운 마두로 체포와 압송에 쾌재를 부르고 있겠지만 앞으로 펼쳐질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마두로는 제거됐지만 반미 사회주의 차비스모 체제는 그대로 있다. 델시는 마두로 못지 않게 골수 반미 사회주의자다. 미국은 말을 듣지 않으면 그도 제거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지만 차비스모 체제의 주요 인사를 모두 압송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외국을 점령하지 않고 리모콘으로 통치해 성공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베네수엘라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미군을 보낼 수밖에 없는데 이 나라는 인구 2천800만에 면적은 캘리포니아의 2배가 넘는다. 이를 점령하려면 어마어마한 병력이 필요할뿐 아니라 무장한 반미 세력과의 전투와 미군 희생자 발생은 필연이다.
군사적 점령도 점령이지만 이와 관련된 국내외 정치적 상황은 더 만만치 않다. 주권 국가를 상대로 한 일방적 군사 행동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국제 사회의 비난은 차치하고라도 도널드는 베네수엘라 침공의 명분을 국민들에게 설명한 적도, 의회의 동의를 얻은 적도 없다. 부시만 하더라도 나중에 허위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사담의 9.11 테러 연관성과 대량 살상 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내걸었고 2002년 10월 243대 107로 이라크 침공에 대한 의회의 동의도 얻어냈다.
지금까지 도널드가 마두로 체포 이유로 제시한 것은 그가 마약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인데 이에 앞서 진짜 마약 밀매 혐의로 미국 법정에서 유죄 평결을 받고 복역중인 전 온두라스 대통령 후안 올란도 에르난데스를 사면한 것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마약 사범 전직 대통령을 풀어주면서 마약 범죄를 이유로 현직 대통령을 잡아들인다는 것은 누가 봐도 자가당착이다.
지금 도널드가 처한 상황은 2003년 ‘임무 완수’를 외치며 항공모함에 내린 부시와 비슷한 것 같지만 더 나쁘다. 그 때는 이라크 침공에 관한 초당적 지지가 있었고 수도 바그다드도 함락된 상태였지만 지금은 초당적 지지는 없고 차비스모 체제는 건재하다. 베네수엘라가 오리노코 강변의 이라크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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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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