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1년 11월 22일 영국 의회는 159대 148로 찰스 1세의 잘못을 지적한 ‘대충고’(Grand Remonstrance)안을 통과시키고 군 통수권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왕은 자신에게 반기를 든 상원의원 한 명과 하원의원 5명을 체포하기 위해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의회로 출동했으나 정보가 새는 바람에 이들은 모두 도주한 뒤였다.
왕과 의회가 사이가 벌어진데는 찰스1세가 의회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세금을 거두려 한 것이 컸지만 가톨릭이었던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에 대한 불신도 있었다. 개신교 중심의 의회는 가톨릭이었던 프랑스 출신 왕비에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찰스가 의회를 상대로 군대를 움직인 것도 의회가 왕비를 탄핵하려 했기 때문이다.
찰스는 결국 로빈후드의 전설로 유명한 노팅햄에서 군대를 일으켜 의회군을 공격했다. 한 때 유리했던 전세는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모범군’(Model Army)의 등장 이후 역전돼 찰스는 의회군에 의해 체포되며 반역죄로 기소돼 유죄 평결을 받고 도끼로 목이 잘려나간다.
370년도 넘은 사건이 요즘 다시 뉴스에 등장했다. 한국 법원이 윤석열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하면서 이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의회와 사사건건 대립하다 왕비에 대한 공격을 막겠다고 의회로 병력을 보냈다가 권좌에서 쫓겨난 점은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점도 많다. 당시에는 왕의 권력은 신에게서 부여받았기 때문에 절대적이라는 왕권신수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찰스 입장에서는 신의 대리인인 자신에 대해 반기를 든 의회를 응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의회가 자신을 재판해 처벌하는 것은 그야말로 신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대로만 권력을 행사하도록 정하고 있다. 일례로 계엄은 전시 또는 그에 준하는 극심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만 발동할 수 있다. 또 국회가 과반수로 그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즉시 해제토록 하고 있다. 계엄령을 계몽령으로 쓸 수 있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군대를 국회로 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윤석열은 헌법을 위반했으며 국회를 무력으로 장악하려 한 것은 명백히 내란에 해당한다.
이 점에서 그의 행동은 찰스보다는 박정희의 10월 유신에 가깝다.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비상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으며 정치 집회 금지, 언론 검열, 정치인 체포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없었다. 헌법에 없는 권한을 마음대로 행사해 국회를 공격하는 것은 내란 행위다. 10월 유신을 ‘궁정 쿠데타’로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박정희는 10월 유신에 성공해 장기 집권에 들어간 반면 윤석열은 몇시간만에 실패로 끝난 첫번째 이유는 두 사람의 능력차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는 나름대로 치밀한 조직력과 추진력, 군 내부의 지지가 있었지만 윤석열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차이는 50년 가까운 세월이다. 한국 국민은 서슬퍼런 독재 때도 목숨 걸고 저항해 박정희 체제를 타도했고 전두환마저 법정에 세워 단죄했다. 그 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 군대를 동원해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발상이 너무나 현실에 동떨어져 있다.
그가 이런 행동을 취한 이유는 계엄 20일 전 통과된 김건희 특검법 시행을 막아보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훗날 검건희는 핵심 혐의인 도이치 주가 조작 관련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가만히 있으면 무죄로 끝났을 것을 말도 안되는 소동을 일으켜 본인과 아내 모두 감옥에 갔다.
또 가만히만 있었어도 이재명은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작년 5월 허위사실 공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고등법원 판결이 내려지기 전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바람에 재판이 중단되기는 했지만 몇달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도 이재명은 출마 자격을 박탈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재명에게 대통령 자리를 바친 것이 윤석열이라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문재인과 추미애다. 한직을 돌던 윤석열을 문재인은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발탁하면서 키워줬고 추미애는 법무장관으로 있으면서 온갖 규정을 어겨가며 검찰총장 직무 배제와 징계로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줬다.
돌이켜 보면 윤석열은 정치인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취임하자마자 자기를 도운 이들을 모두 쳐내고 끝없는 뺄셈의 정치를 하더니 이제는 아직도 자신의 계엄이 옳다고 주장하며 제1 야당을 분열시켜 사실상 민주당 절대 권력의 시대를 열어주고 있다. 한때 대학생 시절 모의 법정에서 내란 수괴 전두환에게 사형을 언도한 윤석열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무기형을 받았다는 것이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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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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