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쯤 전의 일이다. 개빈 뉴섬 이 우리 신문사를 방문했다. 샌프란시스코 시장 시절이었을 것이다. 주류 정치인이 마이노리티 신문사를 찾아 인사하고 인터뷰도 하는 일은 드물지 않지만, 뉴섬처럼 편집국 데스크마다 돌며 기자들에게 악수를 청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가 나의 책상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을 때, 입에서 예기치 못한 탄성이 튀어나왔다. “쏘 핸섬!”
정말로 놀라서 내지른 말이었다. 그렇게 잘 생긴 남자를 스크린 밖에서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난기도 있고 무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씩 웃으며 지나갔다. 뉴섬이 누군지도 잘 모르던 때였으니, 그 잘생긴 사람이 훗날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쳐 마침내 2028 미국대선 잠룡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개빈 뉴섬(58) 주지사가 요즘 뜨거운 조명을 받고 있다. 2주 후 발매될 회고록 “서두르는 젊은이”(Young Man in a Hurry: A Memoir of Discovery) 때문이다. 뉴욕타임스가 ‘2026년에 가장 기대되는 책’으로 꼽은 책, 대중의 이미지와 많이 다른 뉴섬의 인생여정을 솔직하게 기록한 자서전이다.
주요 신문들에 따르면 이 책은 원래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이 쓸법한 미국과 정치에 관한 내용이 될 예정이었으나, 초고를 본 편집자의 조언에 따라 어린 시절부터 2019년 주지사가 되기 직전까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술회하는 자서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훨씬 진솔한 감동이 전해진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개빈 뉴섬을 이야기할 때 언론에서 자주 거론하는 주제는 세 가지다. 난독증, 게티 가문과의 친분, 그리고 첫 아내 킴벌리 길포일에 관한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재미없고 의미도 없는 이야기는 길포일과의 인연으로, 그녀가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전 약혼녀였다는 사실 때문에 화제가 되는 것이다. 그녀와 2001년 결혼하여 4년 후 이혼한 뉴섬은 “야심 찬 두 사람이 편의를 위해 맺은 관계, 친밀함보다는 실용적인 관계였다”고 묘사했다. 뉴섬은 2008년, 다큐멘터리 제작자 제니퍼 시벨과 결혼하여 두 아들과 두 딸의 가정을 꾸리고 있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이야기는 난독증(dyslexia)에 관한 것이다. 뉴섬은 5세 때 심한 난독증 진단을 받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이를 핑계로 공부를 소홀히할까봐 알려주지 않았다. 이 학습장애 때문에 학교에서는 매일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고, 집에서는 숙제할 때마다 어머니와 울고불고 다투는 좌절의 나날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성적은 형편없고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으나, 뛰어난 야구실력으로 산타클라라 대학에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정치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성적이 좋아졌고 자신감이 생겨났으며 난독증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면서 뛰어난 기억력과 끈기와 의지를 갖추게 되었다.
지금도 뉴섬 주지사는 매일 아침 그날의 보고서를 세 번씩 밑줄 그으며 읽는다. 그리고 요약한 내용을 노란카드에 써서 주머니에 넣고, 기자회견이나 연설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다시 공부한다. 텔레프롬프터를 보고 연설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인데, 때때로 완전한 정보 숙지를 위해 참모들과 질의응답까지 한다니, 5~6분의 발표를 위해 6시간씩 준비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뉴섬이 성장기에 겪은 ‘특이한 이중생활’이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뉴섬은 정치적 영향력이 큰 판사였고, 미국최고 부자였던 고든 게티의 가까운 친구였다. 하지만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는 세 잡을 뛰고 투베드룸 아파트에 하숙을 들이며 두 아이를 키웠다. 뉴섬도 십대 시절 신문배달을 해야 했던 궁핍한 가정이었다.
반면 아버지 쪽으로는 초현실적인 경험이 이어졌다. 여름휴가 때면 게티 가족의 개인제트기, 리조트, 리무진을 이용하면서 헬리콥터를 타고 캐나다 북극곰을 촬영하고, 세렝게티 상공에서 열기구를 타고, 스페인 국왕과 함께 유럽에서 일주일을 보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때 게티 가족이 값비싼 선물을 보내면 남매는 마음에 들지 않는 척했고, 어머니는 선물을 반품하여 그 돈으로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주고 생활비에도 보태는 이상한 생활이었다.
뉴섬은 대학졸업 후 와인사업과 레스토랑, 숙박업, 의류소매업 등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게티 가족의 투자와 지원도 있었지만 이로 인한 ‘금수저’ 이미지를 늘 부담스러워했던 뉴섬은 정치계로 진출하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아버지의 인맥으로 29세에 샌프란시스코 주차 및 교통위원회 커미셔너로 임명된 그는 이듬해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2004년 샌프란시스코 최연소 시장이 되었다. 그리고 부지사를 거쳐 2018년, 압도적 표차로 가주 주지사 자리에 올랐다.
지금 개빈 뉴섬은 2028년 대통령선거의 가장 유력한 민주당 대선주자다. 고령화가 심각한 미국 정계에서 그의 젊고 반듯하며 활력 넘치는 이미지는 신선하고 아름답다. 당선된다면 로널드 레이건 이후 40여년 만에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신의 미국대통령이 나오게 된다. 트럼프가 망쳐놓은 미국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후보,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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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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