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우리 집 잔디밭에는 지상의 작은 태양들이 먼저 떠오른다. 노란 민들레다. 아직 나무들이 연약한 잎조차 다 펼치기 전이건만, 잔디 사이사이에는 성급한 노란 점들이 하나둘 그리움처럼 피어난다. 어느 날 아침 문을 열고 나서면 마치 누군가 밤사이에 은밀하게 작은 해를 심어 놓은 듯 잔디밭 여기저기에 꽃의 조각들이 반짝인다. 처음에는 그 찬란함이 반갑기보다 성가시다. 그저 잔디를 가지런히 가꾸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호미를 들고 나가 깊숙이 뿌리를 파내기도 하고 독한 약을 뿌려 보지만, 민들레는 결코 순순히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민들레의 뿌리는 눈에 보이는 꽃의 화사함보다 훨씬 깊이 내려앉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단 한 송이의 꽃을 지탱하기 위해 땅속에서는 굵은 뿌리가 어둠을 움켜쥔 채 아래로, 더 아래로 길게 내려가 자리를 잡는다. 이 끈질긴 생명력 안에는 부러지고 끊겨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신비가 숨어 있다. 줄기와 잎이 모두 사라져도 땅속 깊이 남은 작은 뿌리 조각 하나에서 다시 생명이 움튼다. 상처 입은 자리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기어이 또 하나의 삶을 밀어 올린다. 호미질에 허리가 끊기고 몸이 조각나도 그 비정상적인 마디마다 다시 생명의 불씨를 지피는 것이다. 그 처절한 기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춘다. ‘이 정도면 이제 다 뽑았겠지’ 싶어 돌아서면, 며칠 뒤 어김없이 다른 자리에서 노란 고개가 들린다. 그것은 어쩌면 “나는 아직 여기 살아 있어요.”라고 보내는 고요한 생존의 타전일지도 모른다.
민들레는 시련 앞에서 제 몸의 형상을 바꾸는 지혜를 안다. 잔디가 자주 깎이고 발길에 짓밟히는 자리에서는 꽃대를 높이 세우지 않는다. 대신 잎과 꽃을 지면에 바짝 붙여 스스로를 낮춘다. 예리한 예초기 날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도 그 낮은 포복의 자세 덕분에 치명상을 피하며 끝내 꽃을 피워낸다. 낯선 타국에서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리던 우리의 시간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꽃이 지고 나면 민들레는 둥근 솜뭉치 같은 홀씨를 빚어낸다. 낙하산 같은 미세한 털에 의지해 바람의 결을 타고 떠나는 그 가냘픈 씨앗들은 벌이나 나비가 찾아오지 않는 외로운 곳에서도 스스로 생명을 잉태하겠다는 고독한 결단처럼 보인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다음 세대를 길러내려 애쓰던 우리 어머니들의 강인함이 그 하얀 씨앗 속에 고스란히 맺혀 있다.
씨앗은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비옥한 잔디밭일 수도, 거친 길가의 흙일 수도, 혹은 차가운 보도블록 사이의 좁은 틈일 수도 있다. 민들레는 단 한 줌의 흙만 허락된다면 그곳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뿌리를 내린다.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씨앗들을 바라보며, 저 모습이 어쩌면 우리 삶의 궤적과도 닮았다고 느낀다. 우리도 그렇게 이곳에 왔다. 정든 고향을 등지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듯 삶의 이정표가 달라졌을 때 바다를 건너 이 낯선 대지에 내려앉았다. 처음에는 모든 감각이 서툴렀다. 혀끝에서 맴도는 언어와 낯선 공기, 사람들의 표정과 빠른 걸음걸이조차 넘기 어려운 벽처럼 느껴지곤 했다.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단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민들레가 그러하듯, 씨앗이 떨어진 자리에 곧바로 꽃이 피지는 않는다. 먼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뿌리를 깊게 내리고, 그 근간이 단단해진 뒤에야 비로소 초록 잎과 노란 꽃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든다. 이민자의 삶 또한 그러하다. 처음의 시간은 오롯이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다. 낯선 질서를 익히고 세상의 흐름을 더듬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의 토대를 조금씩 넓혀 간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잔디밭에서 호미를 들지 않는다. 어느 해 봄, 흐드러지게 핀 노란 꽃들을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그 자리에서 제 몫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어디에 있든 서로를 알아본다. 타국에서 우연히 들려오는 익숙한 말소리에 가슴이 울리고, 음식을 나누며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모습은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민들레의 풍경을 닮아 있다. 처음에는 홀로 떨어진 씨앗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 그곳은 하나의 공동체가 되고, 잊지 못할 삶의 풍경이 된다. 우리는 그저 조용히 일하고 가족을 품으며 다음 세대가 걸어갈 길을 위해 그 길을 따라 살아간다.
민들레가 꽃을 피우기 전 뿌리를 먼저 키우듯, 우리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삶의 근간을 조용히 쌓아왔다. 햇빛 속에서 반짝이며 바람을 타는 하얀 씨앗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 한켠이 오래도록 잔잔해진다. 그 씨앗 중 하나는 다시 먼 곳까지 날아가 또 다른 봄의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바람에 실려 낯선 땅에 내려앉았지만, 끝내 뿌리를 내리고 기어이 꽃을 피워내는 삶처럼.
봄날, 민들레가 수놓인 잔디밭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마음에 새긴다. 민들레는 결코 뽑아내야 할 잡초가 아니라고. 그것은 먼 길을 건너온 영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피워 올린 작고 낮은 고향 같은 꽃이라고. 그 작은 꽃들이 바람 속에서 서로를 부르듯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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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이 워싱턴문인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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