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남쪽 땅에서부터 올라온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봄의 근원을 거슬러 내려가 남도를 향하게 된다. 육지에는 봄꽃이 저마다 꽃망울을 터뜨리고 바다에는 월동을 마친 생명이 한가득 꿈틀거린다. 남도의 땅과 바다를 한눈에 담기에는 역시 섬이 제격이다.
전남 고흥군 거금도는 섬이지만 육로로 연결돼 있어 선박 이동의 부담이 없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봄바람을 온몸으로 느껴도 좋고, 드라이브를 나가도 좋다. 특히 자전거 여행의 경우 지난해 9월에 이어 이달 말 ‘고흥 블루마린 자전거 여행’이 개최되는 ‘검증된 코스’다.
봄바람, 봄바다 가르는 거금대교
고흥 자전거 여행의 핵심은 거금대교다. 녹동항 남쪽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2,208m의 연도교다. 상부가 2차선의 자동차 통행로인 것에 반해 하부는 자전거 및 보행자 전용도로로 설계됐다. 이런 구조를 채택한 최초의 해상교다. 자동차 통행로는 소록도의 육상 터널을 지나 소록대교까지 이어지고 자전거·보행자 도로는 터널로 이어지지 않고 소록도의 보행로와 연결된다.
가볍게 즐기고 싶은 여행객은 거금대교 남단 거금휴게소 자전거 대여소를 이용하면 좋다. 1시간 동안 자전거와 헬멧을 무료로 대여해준다. 누구든 거금대교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용해볼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이다.
자전거를 몰며 선선한 바닷바람을 가르는 동안 찬란한 봄빛 남해가 시야의 양 끝을 스친다. 남해의 수많은 크고 작은 섬 사이로 윤슬이 그려진다. 반짝이는 윤슬이 눈에 밟혀 정작 자전거 페달 밟는 일을 잊을지 모른다. 상행로 기준 왼편에 소화도, 오른편에 대화도 상화도 하화도가 가까이 지난다. 풍광이 거금대교의 노란 트러스(연속된 삼각형으로 짜서 하중을 분산시키는 구조물)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말았다 하는 것이, 이마저 남해의 윤슬마냥 반짝이는 것 같다. 멀리 보이던 소록도 앞바다 양식장이 점점 커 보이기 시작하면 종착지인 소록도 인근에 다다른 것이다.
한센인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소록도는 근대사의 어둠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섬이다. 소록도 대부분은 국립소록도병원 부속시설과 한센인 생활·요양시설 부지로 일반 관광객 통행이 금지돼 있지만, 소록도 해수욕장과 중앙공원, 한센병 박물관은 개방돼 있다.
거금대교 자전거도로로 진입할 경우 섬 도로의 경사가 급하고 흙길이라 주행 난도가 다소 높다. 어려운 길이지만 오랜 기간 통행이 드물었던 지역인 만큼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의 웅장함을 목도할 수 있다. 송림, 갯바위, 모래사장이 빚는 해수욕장의 경관이 특히 일품이다. 자전거 주행에 자신 있는 여행객이라면 도전해 봐도 좋다.
다시 거금대교를 거슬러 본격적으로 거금도를 탐방할 시간이다. 거금대교 남단에서 동쪽 해안선을 따라 거금일주로를 3.7㎞ 달리면 석정리 만(灣)에 닿는다. 작은 어선 몇 척이 정박해 있는, 거금도 북단에 위치한 작은 만이다. 분주함과 소란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곳이다. 물때에 따라 잠겼다가 드러나길 반복하는 노둣길이 바다를 향해 뻗어 있다. 하루에 두 번씩 물에 잠기는지라 노면에 파래 등 해초 따위가 자라 있지만 만을 가로질러 반대편에 닿을 듯 뻗어 있는 길을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떨치기 힘들다.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조심히 바다의 품을 향해 나아가면 남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은은히 풍겨오는 바다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닿을락말락 발가락에 찰박이는 바닷물이 금세 차오를까 걱정되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거금도의 해안선을 따라 각양각색의 바다 풍경을 즐기다 보면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진다. 해넘이 시간이 되면 섬의 서편 신양선착장이나 우두항 인근에 있기를 권한다.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알려진 연홍도, 더 멀리 보이는 금당도 너머로 해가 진다. 하루의 마지막 해를 바라보고 있자면 하루 종일 전력 질주한 심신의 피로가 사르르 가시는 듯하다. 그간 쌓인 피로, 근심은 지는 태양과 함께 남해에 두고 오자.
먹거리, 마실거리 풍부한 녹동항
거금도 일주의 시작과 끝은 녹동항이다. 거금대교, 소록대교를 거쳐 거금도와 고흥반도를 잇는 육로는 물론 인근 섬으로 가는 배편도 이곳이 기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녹동항의 수산물 위판장 수협활선어회센타는 이 격언을 실천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전남의 풍성한 어장의 대표주자다. 지역 수산물 시장 중에서도 씨알 좋은 제철 수산물이 양껏 입하되기로 이름났다. 전반적으로 후한 인심은 덤.
4월이면 알이 꽉 찬 주꾸미, 감성돔, 바지락, 갑오징어, 백합, 대하 등이 한창 시장에 넘쳐난다. 제철 수산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여행길에 나서는 것만큼 만족스러운 첫걸음도 없다. 매일 오전 7시 30분, 10시 30분, 오후 2시, 하루 3회 경매를 거쳐 수산물이 시장에 유통된다. 갓 잡힌 생물을 맛보고 싶다면 이 시간대 인근에 방문할 것.
싱싱한 해물에 좋은 술도 빠질 수 없다. 위판장에서 불과 320m 거리에 ‘녹동양조장’이 자리한다. 고흥의 특산품인 유자를 재료로 술을 빚는 곳이다. 유자 막걸리와 유자 약주를 빚는다. 설탕(정백당)이 첨가되기는 하지만 아스파탐 등 합성감미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새콤달콤한 대중적인 술을 추구한다.
고흥 유자막걸리(5%)는 고흥 유자의 새콤한 산미와 시원한 탄산감이 일품이다. 열띤 하루의 끝을 자축하기에 제격이다. ‘어떤유자(6%)’는 특히나 젊은 여성층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유자 과육이 가장 많이 함유된 술이라 ‘고흥유자주’와 다르게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과실이 전체 용량의 20% 초과한다고. 유자가 어찌 많이 들어갔는지 술병을 따기 전 척 보기에도 유자 기름이 둥둥 떠 있다. 약주 고흥유자주(12%)는 단맛이 덜하고 후미(뒷맛)에 누룩향이 올라와 단 술을 싫어하지만 유자주를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고흥유자주(8%)는 나머지 둘의 중간, 대중 취향을 가장 잘 반영한 균형 잡힌 술이라 할 수 있다.
녹동항에서 먹을거리, 마실거리까지 다 즐겼다면 이제 여행을 마칠 시간. 봄이 한창인 고흥반도는 돌아가는 길도 심심하지 않다. 도로마다 벚꽃, 개나리, 유채꽃이 가득 피어 화려한 배웅을 한다. 용동항 고흥만방조제 인근은 이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길로 알려져 있다. 서쪽 도덕면, 동쪽 두원면 방면 양쪽 도로 전부 꽃천지이니 시기가 맞다면 반드시 지나가길 바란다. 도덕면 벚꽃길은 도덕면 한적삼거리까지 3.5㎞, 두원면 벚꽃길은 두원초등학교(폐교)까지 3.9㎞ 이어진다.
<
고흥=글 이한호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