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대법원
연방 대법원은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기관의 하나다. 여론조사 때마다 대통령이나 의회보다 항상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이번 대선 결과 표 차가 근소하게 나오자 ‘가장 공정하게 가려줄 기관은 연방 대법원뿐’이란 얘기가 진작부터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항상 이렇게 높은 존경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대법원이 내린 결정중 가장 악명 높은 것의 하나가 ‘드레드 스캇 판결’이다. 드레드 스캇이란 이름의 흑인 노예가 주인을 따라 미주리에서 일리노이로 이주했다. 미주리는 노예제를 인정하는 주였고 일리노이는 인정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자유주에서 살던 스캇은 주인이 다시 미주리로 돌아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노예주로 귀환하게 됐다.
1846년 주인이 죽자 스캇은 자신이 한때 자유인이었던 점을 들어 노예가 아님을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케이스를 맡은 로저 테이니 연방 대법원 판사는 1857년 ‘노예나 노예의 후손은 미국 시민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스캇은 연방 법원에 제소할 자격조차 없다’고 판시했다. 당시 미국에는 400만명의 노예가 살고 있었다. 이 판결은 역사를 거꾸로 되돌려 놓는 판결이었다. 1776년 미국 독립당시 13개 주중 5개주는 흑인의 시민권 취득과 투표권을 이미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이 결정은 노예제를 없애는 방법은 전쟁밖에 없다는 여론을 불러 일으켜 남북전쟁을 촉발하는 원인의 하나가 됐다.
길고도 지루한 대선 법정 공방이 드디어 끝났다. 5명의 연방 대법관이 부시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찬성표를 던진 5명의 판사가 모두 공화당이 지명한 인물이란 점이 새로운 시비거리가 되고 있다. 대법원장 렌퀴스트는 닉슨, 가장 보수파로 꼽히는 스칼리아, 최초의 여성 대법관 오코노, 케네디는 레이건, 최초의 흑인 대법관 토마스는 부시가 지명한 인물이다. 특히 오코너는 대법관 후보로 올랐을 때 베이커 현 부시 개표팀장이 인터뷰해 발탁했다.
더군다나 토마스의 아내 버지니아는 딕 아미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클린턴 행정부의 비리를 조사하러 다녔고 요새는 부시 행정부 요직 리스트를 작성중에 있다. 또 스칼리아 대법관의 아들은 부시 법률팀장이 대표로 있는 법률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이 최고 3~4명까지 대법관을 지명하게 된다는 점도 이해상충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다수의견에 반대표를 던진 스티븐스 대법관은 ‘이번 선거의 승자가 누군지는 분명치 않지만 패자가 누군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법치주의의 수호자인 법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다’라고 꼬집었다. 이번 판결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논쟁에는 종지부가 찍혔지만 판결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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