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다르다는 건 참 소화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식생활에서부터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남의 나라에 와서 살고 있다. 샐러드 대신 김치를 먹어야 하고 서양 사람들에겐 참기 어려운 냄새가 많이 나는 된장찌개를 상에 올리는 식생활에 길들여져 있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대학을 가게 된 아들에게 여자 친구를 허락했었다. 그리고 그녀를 우리의 식탁에 초대했다. 그런데 그녀는 멸치볶음을 보고 비명을 질러댔다. 놀란 내가 왜 그러는가 물었더니 징그럽다고 했다. 할 말을 잃었다. 잔 멸치들이 까만 눈을 또렷이 뜨고 접시 가득히 담겨져 있는 게 그녀에게는 비명을 질러댈 만큼 큰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문화의 충돌은 이렇게 사소한 데서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얼마나 맛있는 멸치볶음인가. 그 다음부터는 아들도 멸치볶음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멸치볶음을 맛있게 먹고 있다. 왜냐하면 멸치볶음은 개장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일어난 개장국 사건으로 한인사회가 한참 분개하고 시끄러웠다. 개를 먹지 않는 나라에 와서 살면 개를 먹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인사회가 분개한 이유는 팔지도 않고 먹지도 않은 개장국을 팔았다고 보도한 워너 브라더스의 채널 11의 기세 등등한 태도에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인 걸로 알고 있다. 그들의 보도가 오보이기를 바라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왜 그들이 그런 의심을 할 빌미를 주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된장을 먹고 멸치볶음을 먹는 것을 그들은 탓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타민족끼리 모여 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은 이렇게 충분히 주고 있다. 그런데도 그 도를 지나쳤을 때는 사회의 지탄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혐오하는 일은 그 더불어 사는 사회에 폐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구태의연하게 하루 하루를 보내는 안일한 생각은 30년을 미국에 살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을 나는 참 실감하면서 산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가정을 꾸리다 온 우리 이민 1세들에게는 한국말이 편하고 한국음식이 좋고 한국사람이 좋다.
구태여 미국생활에 젖어들지 않아도 사실 불편함이 없다. 이런 편안함은 낯선 나라를 개척하려는 도전의식을 차단하고 있고 매일 미국사회에 부딪치는 우리 2세들과의 거리감을 좁히기가 점점 어렵게 되고 있다. 그들은 미국 속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가서 미국화 되어 가고 있는데 우리 세대들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충돌은 개인과 사회뿐만 아니라 국가 간에도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게 하고 있다. 2002년은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리는 해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온 세계가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트집을 잡고 있다. 개장국을 먹는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리면 보이콧하겠다고 으름장이고 각 나라의 동물 애호가들은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성토하고 있다.
최소한의 예의만이라도 지키면서 살면 될 일을 너무 이 사회를 얕보고 독불장군 노릇을 하는 몇몇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한인사회가 다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올해는 우리의 2세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얼굴 붉히는 문화의 충돌을 피해가면서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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