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부 시코쿠섬의 소도시 도쿠시마현은 ‘물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시코쿠섬에서 시만토강에 이어 두 번째로 긴 194km의 요시노강이 현을 관통한다. 유역 면적이 3,750㎢에 이르는 강은 잦은 범람으로 인명을 앗았고, 재산 피해를 입혔다. 매서운 강줄기는 일본 열도에서 가장 물길이 거친 나루토해협으로 이어진다. 광대한 물길이 만든 소용돌이와 협곡 등 자연 환경은 처음 정착한 이들에겐 시련이었겠지만 현재는 지역 상징과 같은 명소로 떠올랐다. 사찰, 신사, 정원 등 유적지나 다양한 맛집과 아기자기한 가게 등에 익숙한 일본 관광객이라면 도쿠시마현의 물길 여행은 새로운 일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 ‘소용돌이’ 그 자체가 된 ‘나루토’나루토해협은 홋카이도를 제외한 일본 본섬 중 3곳(혼슈, 규슈, 시코쿠)에 둘러싸여 있는 세토내해와 태평양의 물길이 만나는 곳이다. 두 물길이 뒤섞이는 도쿠시마현 나루토시와 간사이(혼슈) 효고현 아와지섬 사이 길목은 1.3㎞에 불과해 연중 내내 거친 조류가 흐른다. 평시 평균 유속은 시속 13㎞고 조석간만의 차가 최대로 벌어질 때는 최대 유속이 시속 20㎞에 달한다. 이때 세토내해와 태평양의 수위 차도 1.5m까지 벌어진다.
나루토해협은 ‘소용돌이’로 유명하다. 조류가 거친 간조와 만조 전후로 1시간씩 하루 네 번에 걸쳐 수많은 소용돌이가 생긴다. 거친 물길이 서로 불규칙적으로 부딪치며 발생하는 소용돌이를 일본어로 ‘우즈시오’라 한다. 일본에선 우즈시오라 하면 통상 나루토 우즈시오를 떠올린다. 소용돌이 모양의 어묵 ‘나루토 마키’와 일본의 유명 소년 만화 ‘나루토’도 이곳에서 유래됐다.
소용돌이를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해협 위를 지나는 나루토대교에서 내려다보거나 관조선을 타고 직접 해협에서 바라보는 법이다. 관조선은 1970년대부터 운행을 시작했고 대교는 1985년에 개통했다.
관조선은 나루토시 오게섬 선착장에서 탈 수 있다. 출항 10분이면 금세 소용돌이 구역에 도착한다. 전속력으로 항해하던 선박은 소용돌이 구역에서 승객들이 충분히 관람할 수 있도록 감속한다. 여름은 소용돌이가 작은 편이지만 줄지어 밀려오는 소용돌이에 눈을 뗄 수 없다. 간조 때는 태평양을 향해, 만조 때는 세토내해를 향해 흘러든다. 소용돌이와 파도에 바닷물이 이따금 선상으로 들이친다. 30분이면 관람을 마칠 수 있다.
나루토대교에선 소용돌이를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다. 하부를 투명하게 만든 전망 데크길도 설치돼 있다. 해상 45m에서 발 아래로 소용돌이치는 해협을 관람할 수 있다. 관조선에 비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수직으로 해협을 내려다볼 수 있어 소용돌이 모양을 가장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2023년 54만1,746명이 방문한 도쿠시마 최고 인기 관광지 중 하나다.
■ 태평양 해저 암석 융기한 협곡도쿠시마에서는 협곡이 이루는 절경도 감상할 수 있다. 요시노강의 하류인 도쿠시마 시내에서 강을 거슬러 100㎞가량 올라가면 ‘오보케협곡’이 있다. ‘큰 걸음으로 걷기 위험한 곳’이라는 뜻의 지명답게 양 옆으로 이어진 높은 골짜기가 험준하다. 이어지는 ‘고보케협곡’은 ‘작은 걸음으로도 걷기 위험한 곳’이라는 뜻이다. 협곡을 따라 나 있는 옛길도 ‘사루가에시(원숭이도 되돌아가는 길)’ ‘타이가노하(호랑이 이빨처럼 들쭉날쭉한 길)’와 같이 거친 지형을 일컫는 이름이 붙어 있다.
오보케·고보케는 험준한 만큼 아름다워 일본 천연기념물이자 명승에 지정됐다. 200㎞에 가까운 요시노강 중 단 한 지점을 둘러봐야 한다면 이곳을 꼽는다고 한다. 지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연혁이 오래된 지형이라는 상식도 반대인 곳이다.
이는 오보케·고보케협곡의 단애(낭떠러지)가 본래 태평양 해저에 있던 지반 암석이기 때문이다. 2억 년 전 심해에서 높은 압력을 받아 형성된 결정편암에 조약돌이 섞여 함력편암이 됐다. 4,000년만 년 전 정도에 판 이동으로 해수면 위로 융기됐다. 해저에서나 관찰할 수 있는 암석이 수면 위에서 절벽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후 요시노강이 흐르기 시작하자 지속적으로 침식돼 현재의 모습에 이른다. 범람할 때마다 강바닥의 자갈과 모래를 끌어올려, 이들이 절벽의 표면을 더 빠르게 깎아냈다.
강에서 수상 레포츠를 즐기기도 하지만, 협곡을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 관광이 인기다. 협곡 유람선은 1891년부터 운항했다. 고기잡이 배가 어업을 나가며 겸사겸사 경치를 감상하고픈 관광객을 태운 것이 시초라고 한다. 운이 좋다면 반달곰, 사슴, 원숭이 등을 볼 수도 있다. 강에는 은어와 장어가 서식한다. 오보케협곡에서 고보케협곡으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회항한다. 물길이 세고 수심이 얕은 고보케협곡에는 유람선이 진입할 수 없다.
■ 6.5톤 다래나무로 엮은 넝쿨다리 오보케협곡 인근 이야계곡에는 일본 만화영화에 나올 법한 넝쿨다리 ‘이야노 가즈라바시’가 유명하다. 높이 14m에 길이 45m, 폭 2m로 놓인 전통식 현수교다. 우리나라보다 빽빽한 수종으로 뒤덮인 일본 산간 지역 주민들은 넝쿨다리에 의존해 골짜기를 건넜다.
직접 다리를 건너면 생각보다 넓은 바닥 간격과 계곡의 아찔한 바위 풍경에 본능적으로 넝쿨 손잡이를 꽉 움켜쥐게 된다. 넝쿨은 마른 나무 촉감이다. 다리의 중간 지점에서 보이는 뻥 뚫린 계곡의 경치와 양쪽으로 빽빽한 숲의 모습이 대비를 이룬다. 용기 내 다리 아래쪽을 본다면 계곡을 향해 늘어진 넝쿨이 인상적이다.
이야노 가즈라바시가 여러 넝쿨다리 중 유독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헤이안 시대(794년~1185년)의 마지막 집권 가문인 헤이케 세력이 가마쿠라 막부를 세운 겐지 세력으로부터 도피하며 엮은 다리로 여겨진다. 겐지 세력은 헤이케 세력 말살을 위해 깊은 산속으로 숨은 잔당까지 추적했다. 추격자를 따돌리기 위해 험준한 산과 계곡을 오가며 지나온 다리를 쉽게 제거하기 위해 일부러 넝쿨로 엮었다는 것이다. 메이지 시대까지만 해도 이야 일대에만 12개의 넝쿨다리가 사용됐지만, 점차 사라졌다. 이야노 가즈라바시도 20세기 초까지 쓰이지 않고 방치됐다가 1927년 복원됐다. 현재 이 일대에는 이야노 가즈라바시를 포함해 4개의 다리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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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미요시=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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