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 알뜰살림 길라잡이
플리마켓
넓디넓은 로즈보울 주차장. 해 뜨기 전부터 모여든 사람들이 펼쳐놓은 물건들 사이로 부산하게 움직이며 돌아다닌다. 무전기를 들고 나온 사람들이 중고 가구들을 기웃거리다가 갑자기 무전기에 대고 흥분된 목소리로 떠들어댄다. ‘1950년대 모던스타일의 가구를 발견했다’는 외침. 전문가구상들인 그들은 몇 마디 흥정 끝에 물건을 구입하고 또 다른 물건을 찾아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또 다른 한편에선 산더미처럼 쌓인 헌 옷 더미에서 옷들을 하나씩 꺼내보는 일본인들이 있다. 중고 리바이스 청바지나 빈티지 옷가지와 신발 등의 선호도가 높은 일본에서 온 상인들이다. 애리조나주에서 왔다는 상인은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작은 탁자와 서랍장 등을 소개한다.
야외 대형 거라지 세일
한국선 벼룩시장으로
플리마켓(flea market)은 우리말 그대로 ‘벼룩시장’이다. 주로 야외에서 대형 거라지세일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단, 일반 중고품뿐만 아니라 골동품, 수집품 등을 취급한다는 점이 거라지세일과는 다르다. 보통 한 달에 한번 꼴로 주말에 열리며 옷가지에서부터 가구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대규모인 것이 많다.
플리마켓의 기원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옷가지와 잡동사니를 매매·교환했던 중세 유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이러한 형태의 장이 선을 보인 것은 1950년대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1960, 70년대에 와서인데 이때쯤 대중을 위한 대형 플리마켓 형태로 정착했다. 플리마켓의 대부 격인 로즈보울 플리마켓도 1968년 처음 시작된 것이 지금까지 30여년 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로즈보울 플리마켓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들. 워낙 넓은 벼룩시장이라 길을 잃고 얼마동안인지 돌아다니다 보니 조금 전에 본 듯한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초보’임을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다.
서너 시간 후 페어팩스 고등학교.
작은 무대에서 허름한 기타리스트가 연주하는 재즈음악과 건너편 상인이 팔고있는 온갖 향냄새가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몇 발짝을 옮기니 100년이 넘었다는 조막 만한 가죽으로 제본된 빛 바랜 단편소설책, 낡은 듯하면서도 뭔지 모를 멋이 풍겨나는 액세서리부터 노란색, 보라색, 빨간색 벨벳으로 만든 파격적인 소파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다른 모퉁이에서는 한 상인이 틀어놓은 80년대 유로 퓨젼 뉴에이지 음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의 무리가 있다. 옆 가게의 손님이 상인과 흥정을 한다. 동네 재래시장처럼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곳이다.
플리마켓이 최근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경제침체로 인해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찾는 사람이 많아 진 것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주식보다는 골동품에 투자하려는 ‘꾼’들의 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유행으로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고가에 팔리는 빈티지 가구나 집기들을 사려고 모여든 상인들과 일반 소비자들도 한몫을 하고 있다.
플리마켓에서는 단순한 중고품에서부터 수집품, 골동품에 이르기까지 품목을 망라한 물건들이 거래된다.
마켓의 규모나 거래되는 물건은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주로 주차장 등의 대형 공터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은 주말 야외행사이며, 각양각색의 물건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중고품 활용이 몸에 밴 미국인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샤핑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언제나 붐비는 곳이 플리마켓이다.
햇빛이 따가운 찌는 듯한 여름보다는 요즘처럼 선선한 가을과 겨울이 여유 있게 둘러보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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