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밤마다 1972년 일년 치 신문을 전부 흩어보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 30년 전의 젊음을 체험한 기분이다.
소설이나 삼국지로의 여행과는 아주 다른 충격적이고 복합적이며 사실에 입각한 경험이어서 쉽게 감정의 세계로 몰입하게 된다.
그 해 신문 1면은 사시절 춥고 어두웠다. 월남전 하노이 사이공 폭격, 거의 매일 보게 되는 굳은 표정의 박정희 대통령의 명함판사진, 작은 키를 곧게 세우고 거수경례를 받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금도 숨이 콱 막힌다.
두발상태 의복차림 하다 못해 노래 한 곡조까지 통제 받아야했던 것은 국민을 미성년자 취급했으니 참으면 된다해도 통치자의 의견과 한치 차이만 있어도 악명 높은 고문을 자행하던 그가 지금은 ‘제일 존경받는 대통령’이다.
공산당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월남한 사람들이 체험으로 말하면 설마 했던 세대가 유신의 서릿발을 체험했다. 지금은 유신시대에 태어난 세대가 모국의 주류이고 보면 그들에게 이 신문을 보여주고 싶다. 혹독함은 감히 활자화되어 있지 않지만 행간의 한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시대 주인공들의 행적에 공분 하다가도 그들 다수가 지금 이세상 사람들이 아님을 알게된다.
사회면으로 넘기자. 정치를 틀어막는데 폭발하는 것은 프로판 가스다. 호텔도 상가도 화염에 쌓인 검은 사진 아니면, 마포가 홍수에 잠기는 엄청난 수해, 미주 동포들도 수재의연금 대열에 섰다. 미주 총 한인이 10만, LA는 3만으로 추정되던 때다.
그렇다고 신문은 어두움만 있는 게 아니다. 엄마가 4년을 업어서 대학을 졸업시킨 불구 학생이 고등고시에 합격하고, 평생 억척으로 번 돈을 대학교에 내놓은 할머니, 사회면 구석마다 그 시대의 인정이 추운 밤 군고구마처럼 따뜻하다.
외국에 다녀온다는 것은 특수층만 가능했다. 신문에는 대부분의 탑승자 이름과 직위 목적지까지 실려 있었다. 서민들로서는 자의반 타의반 외유라는 말도 로맨틱하게 들리던 시대였으니까.
‘시대의 산소‘ 김수한 추기경(당시 50)도 젊다.
지금은 지는 해로 지칭되는 김종필 총리도 젊다. 반듯한 이마, 다부진 눈매가 지적이고 강한 모습이지만 불만을 가슴에 감추고 처삼촌 일들을 매일 매일 국회에 나가 변명하기 바쁘다.
이제는 완전히 옷 벗겨 버린 그래서 흥미가 절감된 백두산이 그 당시만 해도 신비의 영산 이었다. 일본 특파원이 야마구찌가 71년 10월 찍어온 백두산 가을 풍경을 겨우 얻어와 신문을 장식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동했던가.
지금은 한 회사만도 1억불의 수출 실적을 올리는데, 그 해 상반기 수출 실적 1위 동명목재가 2,200만 달러, 4위가 대우 1,900만 달러, 삼성물산이 36위 390만 달러이다.
전국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곳은 서울 남대문로 2가 평당 250만원, 전년도 1위였던 명동 1가는 200만원, 고급 주택가인 서린동 을지로 2가는 30만원 정도였다.
지구상 모든 나라는 인류의 평화와 자국의 이익이라는 두 목표를 정해 놓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두 개 모두 제 괘도에 서지 못한 듯 싶다.
이재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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