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초롬한 달빛을 타고 흐르는 가락이 어둠 속에 은밀히 퍼져나간다. 옛 선조들이 오랜 세월동안 가슴 속에 묻어둔 그리움을 절절히 토해내 듯 한(恨)을 씻어내는 우리 고유의 소리를 지금까지 나는 사랑하고 있다. 그 속에는 한순간의 소리가 아니라 간절한 영원의 소리로 듣는 이의 마음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매료시키는 맛이 있다.
우리 나라는 주변에 대나무가 많다 보니 이것으로 만들어진 악기는 옛 조상들의 흥을 좋아하는 민족성에 그 뿌리를 두지 않았나 한다. 형상화된 한 마리의 학의 고고하고도 깊은 소리의 정체를 아늑히 품고있는 자태와 조화를 이루어 낸 단소의 소리는 그야말로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얼결에 잃어버린 진솔한 심성이 대나무를 통해 흘러 내는 깊은 소리일 듯 싶다.
가슴의 꿈틀거리는 그리움의 응어리는 흰 두루마기를 입고 명상에 잠겨있는 한 마리의 학의 정좌한 모습에서 날개를 펼치며 깃털을 파르르 털어낼 때 대나무 통울음이 되어 깊은 내음으로 호소하는 아픔의 소리를 낼 수 있다.
불을 끄고 누워도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밤에 은하를 건너가는 그윽하고 심오한 소리는 한마디로 바람의 소리다. 그것은 벼랑길로 향해 걸어가는 가진 것 다 비워낸 삶의 근원을 미어지게 건드려 흔들어 놓는다. 또한, 은밀히 내성적이면서 바람과 고독이 한순간에 만나서 내는 음률이 이렇듯 하지 않을까?
‘ 텅 빈 대나무 속 / 울리며 지나가는 / 한 사내의 떨리는 속내, / 가을밤 기러기 울음이 되어 / 하늘과 땅 사이 영원을 돌아와 흐른다……’
은은한 물무늬가 하늘거리며 흘러내린 듯한 오동나무에 걸친 12줄로 된 가야금은 또 어떠한가. 이 가락은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같은 맑고 청아한 가운데 한여름에 쏟아지는 장마비와 같은 변화로 감칠나게 멋스러움이 깃들여 있다. 더우기 산조 가락에서 들을 수 있는 단아함과 애절함의 소리는 못내 드리지 못한 여인네들의 지순한 가슴앓이를 은근히 가락 속에 숨겨놓은 듯 하다. 가을 바람결에 들려오는 끊을락 말락 이어지는 가락으로 듣는이로 하여금 애를 끓인다. 더우기 가야금을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의 눈빛은 단번에 자연 속에 빠져들게 한다.
‘청에 앉은 한 마리 나비 / 음을 찾아 꿀을 빨면 / 또 한 마리 나비 / 어린 계면의 흘려내는 여음 따라 / 끊어질 듯 이어져 애태우는 장단 위로 / 천연의 음색조 되어 춤추며 날아다닌다……’
이처럼 아름다운 두 마리의 나비가 사뿐사뿐 손 등위로 날아다니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거기에 유연한 탄력으로 온 몸을 휜 다음 응축해서 줄 하나에 뜨거운 가슴을 보태는 가락은 고요를 삼켰다가 토해내는 소리가 빈 오동나무 속을 깊게 돌아나옴으로 진솔한 울림이 되어 우리 가슴 속에 남아있게 된다.
살아있는 동안 내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우리 것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서 표현하는 내 작은 소망이 비록 속절없다 하여도 타국에서 간간이 느끼는 외로운 삶에 한 가닥 빛을 비추어주는 우리 가락을 영원히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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