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내에 영토를 소유하고 있던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필립 6세의 왕위 등극을 인정하지 않고 군사행동을 감행한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양국은 휴전과 개전을 반복하며 약 한 세기를 전투로 보냈다. 소위 말하는 ‘백년전쟁’을 치른 것이다.
귀족간의 내전이긴 하지만 영국의 랭커스터가와 요크가가 왕권을 놓고 1455년부터 30년간 혈투를 벌였다. 두 집안의 문장이 새겨진 붉은 장미와 흰장미를 빌어 ‘장미전쟁’으로 불려 잔인한 느낌은 덜하지만 강산이 3번 변하는 동안 계속 창과 칼을 휘두른 것이다.
근세로 넘어와 1,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발생한 전쟁을 둘러봐도 몇 년은 보통이고 십여 년을 싸워야 결판이 난적도 더러 있다. 19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라오스는 왕당파와 공산주의 세력간의 내전으로 약 20년을 보냈다. 베트남에서는 1961~1975년에 호치민이 이끈 북베트남과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으려는 미국이 14년간 혈전을 계속했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은 9년, 중일전쟁 8년, 제2차 세계대전 6년, 러시아 내전 5년, 콩고 내전 5년, 제1차 세계대전 4년, 중국 내전 4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4년, 나이지리아 내전 3년, 스페인 내전 3년, 중국·인도 국경전쟁 3년 등 몇 년이 걸린 전쟁이 수두룩하다.
물론 비교적 신속하게 마무리된 전쟁들도 있다. 1년7개월짜리 러일전쟁, 1912년 10월~1913년 8월 발칸반도에서 2차례에 걸쳐 일어난 발칸전쟁 등등. 그런데 묘하게도 1년 안팎의 비교적 짧은 전쟁은 중동에서 많았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선포를 용납 못한 아랍의 5개국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1년2개월만에 종식됐다.
이스라엘은 1956년 프랑스, 영국 등 연합국과 합세해 이집트에 선제공격을 가해 1개월도 안 돼 전쟁을 끝냈다. 또 1967년 아랍연합군과 이스라엘의 한판 승부는 단 6일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결말났다. 1973년 10월 아랍 동맹군에 맞선 이스라엘-연합군간의 욤키퍼전쟁 기간도 보름 남짓이었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걸프전은 91년 1월 연합군이 진군한 뒤 약 1개월만에 종식됐다. 이라크와 이란이 1980년부터 8년 동안 싸웠지만 미국 등 연합군이 가세한 중동전은 속전속결이었다.
이번 미국의 이라크 공격도 이런 낙관론에 고정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전쟁 개시 보름도 안됐는데 벌써 ‘장기전’을 우려한다. 전쟁 지지자들이 주장하듯, 석유자원이나 중동 패권을 탐하는 게 아니라 ‘불쌍한’ 이라크 주민들에게 자유를 선사할 목적이라면 그리 조급해 할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엄청난 피를 먹어야 자라지 않는가. 이라크 주민들이 포탄에 맞아 죽어가면서 “민주주의 만세, 미군 만세”를 외칠지는 모르겠지만.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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