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전통적 통념을 뛰어넘었다. 그 중 하나가
미국을 처음 방문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초등학교 학생들도 어학연수로
미국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요즘 세태에 비추어볼 때 특이하다. 그러면
서도 링컨 대통령을 존경하여 그에 대한 책을 썼다는 것도 그러하다.
그는 대선 기간에 후보자들이 으레 하는 미국방문도 ‘사진 찍기 위해 미
국에 가지는 않겠다’며 미국과의 수평적 대등한 관계 정립을 주장하였다.
그런 그의 이번 미국 방문은 한국의 안보문제와 경제문제를 위한 실질외
교 차원이다.
안보문제는 북한의 핵과 한국의 반미감정과 크게 맞물려 있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 붕괴 후 미국의 관심이 이제 북한의 핵 문제로 넘어가고 있
는 이때에 북한은 늘 그러하였듯이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다고 위협하며
미국으로부터 체제유지에 대한 보장과 원조를 받기 위한 벼랑 끝 외교작
전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국가 차원에서 마약, 위조지폐 밀매, 미
사일 수출을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미사일처럼 핵을 마
구 수출하여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을 우려한다. 이렇게 되면 일본
이 핵을 포함하여 재무장할 테고 그리하면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유발하
게 될 것을 우려한다. 미국은 북한 핵의 제거를 위해서라면 경제적 봉쇄
더 나아가서 군사적 대응도 고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군사적 대응만
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북한의 핵을 용
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한미간에 미묘한 입장의 차이가 난다.
분명한 것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공고한 군사동맹 관계에
기초한 공동 방안이 없이는 북한 핵을 대처할 대안이 극히 제한적이란
점이다. 지난해 6월에 주한미군의 훈련 시 발생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촛불시위는 한국의 민족적 자존심과 맞물려 거대한 반미운동으로
전개되었고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반미감정에 대해 미국 측에서는 주한미군의 재배치 내지는 감축을 거론
하는 등 한미 양국의 전통적 우호관계가 불신과 갈등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번 방문 길에 노 대통령이 미국내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자칫하면 한
국내의 많은 지지자들을 실망시킬지도 모를 수준까지 노력을 기울인 것
은 무척 용기 있는 일이다.
안보문제는 경제에도 직결된다. 즉 북핵으로 인한 한반도의 위기상황은
한국의 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미쳐 경제에 큰 어려움을 준다. 특히 최대
의 투자국이자 수출시장인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는 경제안정에 필수적이
다.
역대 한국 대통령의 방미시 으레 한국 동포들이 제일 많이 사는 로스앤
젤레스를 방문하여 동포들과 만났다. 하지만 눈 도장 한번 찍으려는 것이
주목적인 동포접견보다 노 대통령이 뉴욕증권거래소를 방문하고 월가의
경제거물들과 만나며 실리콘밸리를 방문하는 것은 실리적 경제 외교차원
에서 정말 잘한 일이며 동포들도 이를 이해해야 한다.
재미동포의 입장에서 노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첫째, 북핵 문제와 더불
어 북한의 인권에도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것이다. 북핵의 해결책으로 북
한체제의 유지를 보장한다는 것이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묵인과 동일
시 될 수는 없다.
둘째, 미국 동포가 한국에서 공직 진출시 법적인 문제보다는 국민감정이
란 명분으로 매도되는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 본인도 아닌 가족들 특히
자녀들의 미국 국적이 시비 거리가 되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셋째, 2000년 센서스에 의하면 미국내 한국인 단일 혈통자가 108만명인데
그중 미국귀화 혹은 출생자가 68%로 한국 국적을 가진 32%의 두배가
넘는다. 미국 국적 취득자들이 한국에 나가서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
록 연말이면 소멸되는 재외동포법을 개정하여 재외동포들의 권익을 보호
해 주기 바란다. 넷째, 한국의 안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로버트 김의
구명에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으로서 한번이라도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
면 한다.
임진혁 새크릿 하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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