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그 날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고장 난 차고 문을 아무 생각 없이 확 잡아 내렸을 때였다. 아뿔싸! 벌어진 문의 틈새에 들어가 있던 양손의 중지와 넷째 손가락들이 그사이에 끼어버렸다. 입에서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저절로 신음소리가 났다. 간신히 빼낸 손가락들은 검게 죽어 있었다.
며칠의 아픔 뒤에 다른 손가락들은 살아났다. 등치 큰 왼손 중지 덕분이었다. 손톱 사이로 계속 검은 피가 흐르던 왼손 중지는,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손톱 속에 죽은피가 남아있고 손끝은 감각이 없다.
손가락을 보면서 친구 J와 그의 형 생각이 났다. 고향에서 수재 소리 듣던 J에 비해 형은 초등학교만 나와 지금도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J는 어려서부터 형이 따돌림을 받게 되면 그의 편에 서곤 했다. 지금도 형은 물론 큰조카까지 챙기는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형이 형제들을 대신해서 멍에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공부를 잘한 것도 왠지 형 덕분이란 생각도 들고…”
평생 무역업을 해온 그 친구는 선진국이 경제 전쟁에서 승리하여 풍족하게 살게되면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가 가난하게 살게 된다는 설명을 하다가 한 말이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나의 사춘기 시절 무척 감동을 준 영화였다.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유격대에 파견된 로버트는 험악한 남자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마리아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부모가 학살되고 수용소로 호송되다가 게릴라들이 열차를 습격하여 살려낸 여자였다. 로버트는 그녀가 파시스트들에게 정조를 빼앗겼다는 말을 듣고도 정신적으로 순결한 그녀를 사랑한다.
총을 들고 바위틈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있지만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다리를 폭파하고 철수하다가 부상을 당하고 쓰러진 로버트는 함께 남겠다는 마리아에게 말한다.
“우리 둘은 이젠 당신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자 당신은 우리 둘을 위해서 어서 가 줘. 정말이야. 이제 우리들은 당신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로버트가 추격자들을 막는 사이에 마리아는 다른 유격대에 의해 강제로 말에 태워져 떠난다. 로버트는 죽어도 그와의 고리, 마리아는 살아서 로버트를 가슴에 품고 산다.
얼마 전 오피니언에 한 아버지가 미 해병대원으로 이라크 전장에 가 있는 아들의 편지를 소개했다. “여기서 고생 많이 해도 집에 있는 사랑하는 친구들과 식구들은 고생 안 하게 하기 위하여 기쁘게 날마다 살고 있습니다.” 문장은 서툴지만 어떤 미사여구보다 내게는 감동적이었다.
세상만사는 서로서로 어떤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같은 고리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감성의 차이로 행복과 불행으로 나누어진다.
이제 당신에게 다가온 불행이 어디에선가 당신과 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이에게는 행복으로 다가서고 있다면 당신의 고통을 행복으로 터닝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불행을 행복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사되는 순간은 명작 명화에서처럼 최고의 감동이다. 우리와 악연의 고리 때문에 2,000년 전 십자가를 선택한 어떤 분처럼.
손을 내려다본다. “고맙다 중지야” 다른 손가락들이 상처 난 손가락을 따듯하게 보듬어줄 때마다, 미흡한 나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이를 떠올리고 용서를 빌게 된다.
이재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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