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는 근육이 약화되어 가는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하루 하루를 극심한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다. 어떨 때는 통증이 심해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육체적인 고통도 참기 힘들지만 걷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할 그 날을 눈앞에 두고 산다는 정신적인 고통은 얼마나 클까. 그런데도 메리 입에서 “아프다” “힘들다” 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아침마다 눈을 뜨기 전에 “하나 둘 셋” 하고 심호흡을 하며 용기를 낸 후 눈을 뜬다고 말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깜깜한 세상을 접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빛이 보이는 순간 오늘 하루도 볼 수 있음을 감사하고,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에 갈 수 있음을 감사한다. 목소리가 있어 노래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성악가인 그녀는 언제인가는 노래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면서 눈시울을 적신다. 근래에 들어 자주 손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면서 피아노 건반을 만지면서 그래도 아직은 목소리가 있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 은혜라면서 감사한다. “왜 내가 아파야 하는지 저는 몰라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시지요”라는 가사를 반복하며 노래 부르는 그녀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가슴을 치며 통곡하여도 모자랄텐데 그녀의 입술에서는 감사가 떠나지 않는다. 어떻게 신체의 기능을 잃어 가는 힘든 상황 속에서 감사가 넘칠까. 메리에게 닥친 고통이 내게 닥쳤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할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자신이 없다”가 솔직한 나의 대답이다. 메리의 초연한 모습이 인상깊어 그녀에게 비결을 물었다.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분노하며 울부짖었다 한다.
오랜 병고로 심신이 지쳐갈 무렵에 폐가 없이 태어나서 병원에서만 살다가 죽은 두살 난 아기를 만나게 되면서 “왜 나한테?” 하는 원망하는 마음이 “하나님만이 아신다”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한다. 마음이 바뀌니까, 자신으로만 향하던 눈길이 밖으로 향하게 되었다. 주위를 돌아보게 되면서, 자기보다 더 큰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양로원에 찾아가서 자선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면서 위로를 받게 되었다 한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자기는 너무도 오만한 사람이 되어 구제불능이었을 것이라면서 “하나님은 나를 아신다”라는 자신이 작곡 작사한 곡을 피아노를 치면서 불렀다. 병을 앓기 전에는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다고 믿으면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을 자랑삼았던 어리석은 과거가 있는 사람이라면서 웃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어렵고 까다로운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이 병을 사용하여 자기를 새로 만들어주셨다고 감사한다.
33세 때 초청장도 없이 찾아온 질병이 자신을 인간답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통증을 느끼면서 인간의 한계를 날마다 경험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다워질 수밖에 없더라고 한다.
메리의 간증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받은 축복을 헤아려 본다.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걸어갈 수 있는 튼튼한 발이 있고, 조금은 음치일지라도 마음대로 찬송할 수 있는 목소리 주심을 감사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거미줄에 걸린 아침 이슬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심을 감사 드린다.
김현덕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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