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한인이 며칠 전 LA에서 차를 견인 당했다. 다음날 오전에 글렌데일에 있는 토잉업소로 가 벌금 208달러를 지불하려고 했다. 그런데 토잉업소 직원은 현찰만을 요구했다. “미국에서 현찰 몇 백 달러씩 지갑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있냐”고 점잖게 따졌지만 막무가내였다.
지리가 익숙하지 않은 동네를 빙빙 돌다 현금자동인출기를 겨우 발견했으나 최근 카드를 바꿔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바람에 빼낼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에게 ‘SOS’를 쳤다. 이 한인은 “친구의 바쁜 오전 시간을 빼앗아 미안했다”며 한 두 푼도 아닌 벌금을 현찰로 내라는 토잉업소의 배짱에 분통이 터졌다고 했다. 이 한인은 “다른 한인은 체크를 끊어주려다 거절당하자 지갑을 열었으나 100여 달러가 모자라 집에 전화를 걸어 지원을 요청한 뒤 속절없이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고 전했다.
LA에 사는 30대 직장인은 얼마 전 친구들과 카페에서 차를 마신 뒤 계산을 하려다 카드를 받지 않는다는 종업원의 말에 염치 불구하고 친구들 호주머니를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무도 현찰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은행에 가서 인출해 와야 했고 그 동안 일행은 업소 안에 ‘인질’로 묶여 있었다고 했다.
액수가 조금 많아지면 돈을 내려던 사람은 더 무안해지게 마련이다. 사업을 하는 친구에게 얻어먹기만 했다는 한 한인은 “친구와 셋이 삼계탕을 맛있게 먹은 뒤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러 잠깐 식당밖에 나가있는 동안 계산을 하려 했는데 카드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며 당시의 당혹감을 전했다.
현찰만을 고집하는 업소는 얼굴을 익히 아는 손님에게도 인정사정 없다. 한 직장인은 “식사 후 계산을 하려다 보니 10달러 정도가 부족했다. 전혀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 다음에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아 인근의 현금자동인출기에서 빼내 갖다 주었다”며 업주의 불친절에 혀를 내둘렀다. “카드 사절”은 카드 결제 수수료를 내지 않으려는 얄팍한 상술과 거래 흔적을 남기지 않아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숯검정 마음’에서 출발한다. 당장은 금고에 현찰이 조금 늘겠지만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원시적 경영’이다.
가뜩이나 돈이 없는 주정부가 요즘 빨래 짜듯 세수확대에 골몰하고 있다. 카드나 체크를 받지 않고 현찰만을 요구하는 이들 업소를 조사하면 적자에 허덕이는 정부는 십중팔구 짭짤한 세수를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꼬리가 길면 밟히게 돼 있다. 작은 것을 탐내다 큰 것을 잃을 수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고객들이 발길을 끊기 전에 ‘오로지 현찰’이란 구식 거래를 떨쳐 버리는 게 건전한 상거래 풍토 조성은 물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 아닐까.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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