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 노동절 연휴를 전후로 거의 모든 학교가 개학을 하면 새 학년을 맞게 된다.
학생과 학부모뿐 아니라 일선에 있는 교사들 역시 들뜬 마음으로 학생들을 맞이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 학기를 시작하고자 다짐한다.
방학동안 훌쩍 커버린 고학년 학생들부터 자신의 몸체보다 큰 가방을 메고 ‘어리버리’ 다니는 신입생들까지 모두가 내겐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런 만큼 또 다시 입시에 눌려 축 늘어진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잠시 반가웠던 마음을 이내 착잡하게 한다.
해가 거듭될수록 대학 문이 좁아진다는 소식, 이제는 성적관리만으로는 부족해 한가지 악기와 운동쯤 기본 필수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거론된 지 오래다.
그런데 사실 이같은 대학 입시 정보는 학교 안에서 보다 보통 학교 밖에서 들은 이야기를 확인하려고 전화하시는 학부형들의 문의를 통해 접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또는 바꿔야) 대입에 유리한가’가 대부분 전화문의의 핵심이다.
또 새 학기가 시작되면 늘 받게 되는 ‘어떻게 준비해야 명문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질문엔 매번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그 질문 속엔 아이들의 하얀 마음속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어른들의 생각으로 가로막힌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왜 굳이 본인이 원하는 전공과 본인이 하고자 하는 미래를 충족시킬 대학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획일적인 맞춤식 공부를 해야 할까. 마음에 있는 대로 “관심을 가지시되 너무 강요하거나 들볶지 말고 숨통을 터 주세요”라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제 자식 일 아니라고 무관심하다’는 소리 듣기 십상. 그렇다고 해서 족집게 식으로 얘기했다가 잘못 되기라도 하면 두고두고 ‘원수’가 될 터이다. 그러니 양심을 접어두고 나 자신도 못할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더군다나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대학생이 된 졸업생둘이 얼마 전 나를 찾아왔다. LA 근교 이름 있는 공과대학으로 진학해 이제 2학년이 되는 이들은 지난해에 비해 좀더 생각이 실리적으로 바뀐 것 같았다.
한 명은 “1학년 초 140명이던 과 학생들이 1년만에 40명으로 줄었다”는 얘기며, “앞으로 3년 후는 아마 10명 내외일 것”이라는 일리 있는 추측을 해가며 요즘 잠도 못 자면서 밤새워 공부한다는 기특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또 다른 한 명은 “부모님 눈에 들기 위해 선택했던 전공에서 일찌감치 자신이 원하는 전공으로 바꿨다”며 아마 심란한 마음에 위로라도 얻고 싶은 듯한 눈치였다. 이것은 비단 경쟁이 심한 공과 대학만의 얘기는 아니다.
의과 대학으로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 중 100여명의 생화학과 신입생들 역시 1년 후 반 이상이 떨어져 나가고 나중엔 10명 안팎이 남는다는 얘기도 종종 들어왔다.
자녀가 학교 공부에 충실하고 평소 책을 자주 접하며 독서를 통해 자신의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것, 학생의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봉사 활동이나 그 밖의 활동을 통해 충분히 전달하는 것 외에 무엇을 조언할 수 있을까.
지난 몇 년 동안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SAT성적이 조금 낮더라도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한 학생들이 대학 생활도 행복하게 하는 것을 보아 왔다. 이제는 명문 대학에 입학할 방법론을 논하기보다 자녀들이 오늘 하루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론을 논할 때다.
그런 여유 있는 부모의 모습은 자녀들로 하여금 편안하고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줄 뿐 아니라 정서적 불안이나 공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릴 수 있는 묘약이 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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