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경영간섭… 주도권 다툼 반복
최근 은행권의 잇단 행장 교체 및 사임 사태에서 나타난 한인 은행들의 경영 구조의 흔들림이 심상찮다. 나라은행 양 호 행장이 취임 1년만에 사표를 던진 것은 개인적 문제도 있지만 이사회와의 갈등이 실제 배경이었다는 지적이고, 새한은행도 벤자민 홍 행장을 전격 영입하는 과정에서 이사진간 분열상을 표출하며 결국 감독국의 지적을 받는 등 한인 은행권 이사진 및 경영진의 자질과 역할이 다시 한 번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같은 한인 은행권의 ‘경영 구조 위기’ 상황을 계기로 문제점을 진단하고 바람직한 변화 방향을 짚어본다.
이사·이사회 변해야 한다 - 실태와 문제점
전문성 결여…‘잘못된 주인의식’공사 구별 못해
은행 이사회는 은행 발전의 장기적 방향을 정하고 행장 임명과 경영진 감독 등 중요한 역할을 해야하는 기구다. 그러나 현재 한인 은행 이사들이 이같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크다.
한인 은행 이사회의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무리하고 지나친 경영 간섭 ▲일부 이사들의 자질과 도덕성 부족 ▲은행 발전을 저해하는 이사회내 분열과 반목 등이다.
‘고질적인 이사 병’으로까지 불리는 이같은 은행 이사진의 전횡과 문제점들에 대한 지적은 사실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경영 시스템 불안에 책임의 많은 부분이 이사회에 있다는 게 은행권의 지배적인 견해다.
■무리한 경영 간섭
한인 은행들의 경우 은행의 규모에 관계없이 행장과 간부들이 결정해야 할 경영 사안까지 이사들이 사사건건 간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사들의 대출 결정에 대한 부당한 압력 행사나 특혜 청탁, 직원 인사 개입과 같은 행위들이 거리낌없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한 은행에서는 자체 심사를 통해 행장이 불가 결정을 내린 대출을 일부 이사들이 나서서 시행하라고 번복한 일이 있었다. ‘경쟁이 심한데 다른 은행에 뺏기면 안된다’는 이유였지만 공정한 심사와 일관된 결정이 생명인 은행 대출 업무의 근간을 무시한 행태라는 비난이 일었다.
또 이사들이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예금 손님 보낼테니 잘 해줘라”는 식의 요구는 예사고, 일부 간부 직원들에게 사적으로 지시하고 보고 받는 ‘직원 줄세우기’도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 은행의 경우는 은행 업무에 비전문가인 이사들이 아예 예금과 대출 마케팅에 나서고 있어 행장과 경영진의 고유 업무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베인스-옥슬리법(SOX) 이후 이사들의 경영에 대한 책임이 커지긴 했지만 한인 은행 이사들의 경영 간여는 대부분 전문적인 영역과는 거리가 멀고 은행 광고 문구 등 오히려 지엽적인 수준인 것이어서 경영진의 의욕만 꺾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은행에서는 오래 전에 계획된 은행 자체 연례 행사 날짜를 이사장이 자기 일정에 맞지 않는다며 변경을 요구하며 화를 내 직원들을 어이없게 했다. 이 이사장은 이전에도 행장이 고객들에게 보내는 인사말의 문구까지도 맘에 들지 않는다며 고치라고 지시하는 등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사회의 분열과 반목
은행 관계자들은 특히 한인 은행 이사들이 패로 갈려 서로 은행내 영향력 확대를 위한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행태가 은행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폐해로 보고 있다.
새한은행이 벤자민 홍 행장 영입 절차를 놓고 은행 감독국의 지적을 받은 것도 결국 이사들간 대립이 배경이 됐다. 일부 이사들이 홍 행장 영입을 공개적으로 정당한 절차를 통해 논의하지 않은 채 쿠데타처럼 처리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됐고 이에 반대한 이사들도 이같은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하지 않고 은행 감독국까지 끌고 가 결국 일을 커지게 했다는 지적이다.
미래은행의 경우 신설 초기 증자 배분 문제 등을 놓고 이사들끼리 법정 소송을 벌여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최근 나라은행의 경영 시스템 불안의 경우도 주주 이사들과 영입파 전문 이사들의 해묵은 갈등이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질과 도덕성 부족
일부 이사들의 자질과 도덕성 부족도 문제다. 커뮤니티 은행의 성격상 주식 지분을 위주로 이사회가 구성되다보니 은행 경영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고, 또 은행의 외부 용역을 이사 개인의 산하 업소에 맡기도록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는 등 은행 업무를 자기 개인 비즈니스의 이익과 연결시키려는 도덕성 해이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은행에서는 영어 구사력과 전문성 등을 위해 영입한 전문직 이사들을 두고 있으나 이들도 커뮤니티 은행 운영과 직접 관계가 없는 직종의 인사들이 많고, 주류은행권 출신 일부 전문 이사들의 경우 다른 이사들과 경영진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 불만을 사고 있다.
일부 이사들의 ‘잘못된 주인의식’과 공사를 구별 못하는 태도도 이사들의 개인적 자질을 의심케하는 부분이다.
과거 한인 은행 초창기에 이사들이 은행 직원에게 가족 공항 픽업까지 시켰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지만, 아직도 직원을 비서 부리듯 하는 이사들이 여전히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은행에서는 이사가 직원에게 “사무실을 새로 꾸며야 되는데 적어도 행장 사무실 정도는 돼야 하니 행장방 크기를 재서 알려달라”는 지시를 내려 실제 직원이 방 치수를 재서 보고한 일도 있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행장도 이사들 눈치보기 바쁜데 실무 직원들이 이사들의 요구를 어떻게 거부하겠는가”며 “한인 은행들이 크게 성장한 지금 이같은 이사들의 행태는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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