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문화를 즐기기에 LA는 괜찮은 곳이다. 우선 따로 시즌이랄 것도 없이 온갖 공연이 일년 내 계속된다. 뉴욕 등에 비해 작품 수준이 좀 빠지지 않느냐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LA 인근에 산재한 공연장들이 역할을 분담해 서로 레퍼토리를 보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볼쇼이 발레단은 미 순회 공연 때 월트 디즈니홀이나 LA 뮤직센터는 건너뛰지만 오렌지카운티 퍼포밍 아츠센터 공연은 거르지 않는다.
어제 저녁 런던 심포니 공연에서 알 수 있듯 UCLA 로이스홀 레퍼토리도 만만치 않다. 브로드웨이 뮤지칼이 아쉽다면 할리웃의 유서깊은 팬터지 극장을 찾으면 된다. 세리토스 퍼포밍 아츠센터 등도 다양한 메뉴로 LA의 문화욕구에 부응하고 있다.
야외공연장이라고 할리웃 볼만 생각하는 것도 잘못됐다. 오렌지카운티의 할리웃 볼이랄 수 있는 어바인 버라이즌 앰피디어터도 갈수록 훌륭한 레퍼토리를 갖춰가는 등 좋은 야외 공연장은 많다.
공연이 너무 많다 보니 문제는 선택이다. 공연에서도 샤핑이 필수적이다. 핸드백처럼 공연도 검증된 ‘명품’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명품은 너무 비싼 것이 흠이다. 오는 25일부터 시작되는 LA 오페라‘피가로의 결혼’만 해도 좋은 자리는 200달러가 넘는다. 커플이 저녁도 먹고 하려면 500달러는 가져야 한다.
문화생활에서도 경제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비문화적 일상을 탈출해 문화현장에서 찾으려는 것이 감동이라면 그 감동이 꼭 비싼 디즈니홀이나 LA 뮤직센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광역 LA권에 산재한 작은 공연장의 작은 음악회를 찾는 것은 효율적으로 공연문화를 즐기는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음악회에서는 싼 게 꼭 비지떡이 아니란 걸 알게 될 것이다.
지난달 야사 하이페츠 소사이어티 주관으로 글렌데일 알렉스 디어터에서 열린 김민진 바이올린 연주회도 좋은 예다. 유럽이 활동 무대인 김민진은 미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연주가지만 이날 피아노 반주자와 완벽한 조화를 이뤄내 갈채 속에 묻혔다. 그는 고전과 낭만에서 시작, 드뷔시와 라벨을 거쳐 비교적 현대에 이르는 음악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청중이 많지 않아 오히려 분위기는 오붓했다. 한 관계자는 “사라 장 연주회 보다 더 즐겼다”고 말 했다.
한 달전 페퍼다인대학 리사이틀홀에서는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입상자인 조이스 양의 연주회가 열렸다. 조이스는 지난 여름 1만여 청중이 운집한 어바인 야외극장에서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며 만만찮은 카리스마를 보였다. 그런 연주가를 정원 118명의 작은 홀에서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음악체험이었을 것이다.
김민진 연주회의 입장료는 20달러, 조이스 양 티킷은 30달러였다. 유명 연주가이기도 한 음대 교수들이 대학내에서 하는 어떤 공연들은 인터넷으로 사면 10달러면 된다. 경제적인 문화 즐기기가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는 예이다.
피아노 독주, 혹은 바이올린과 피아노 한 대 등으로 이뤄지는 작은 음악회의 가장 큰 즐거움은 연주자의 바로 코앞에서 그의 음악을 스폰지처럼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창한 오케스트라만 맛이 아니다. 양념 갈비보다는 소금에 쿡 찍어 먹는 생갈비에서 더 깊은 고기 맛이 나듯 작은 음악회를 잘 찾으면 그 속에서 음악 고유의 깊은 맛을 더 진하게 맛볼 수 있을 지 모른다.
안상호 부국장·특집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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