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올 봄이 지난해 봄과 다르더니 매년 이 맘 때면 LA에 와 우정을 나누던 한국 친구 정군의 노래가 작년과 달리 처연하다.
“접어야겠어”
“접다니? 뭘”
“힘들어 못하겠어, 하루에 3,000만원씩 손해야”
대학친구 정군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5대양6대주를 누비던 그야말로 잘나가던 친구다. 지난 십수년 동안 경쟁 수출업체들이 거의 다 쓰러져간 와중에도 실력으로 버텨온 친구다. 그런 그가 920원을 밑도는 최근의 환율에 두 손을 들었다.
기약 없이 떨어지는 환율에다 날이 갈수록 오르는 유가를 도저히 감당키 어렵다는 것이다. 조석으로 다그치는 금융권의 눈초리는 죄인 다루듯 하고 어떻게 잘 버틴다 하더라도 주체 못할 빚더미에만 올라앉을 지경이라는 하소연이다.
LA 다운타운.
“손 털었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손은 왜 털어”
만난 지는 얼마 안됐지만 마음이 통했던 친구 김군은 20년 이상을 애지중지 키워온 사업체를 최근 그만뒀다. 10년 가까이 같이 일해오던 믿었던 전무가 7명의 직원을 빼내 경쟁업체로 가버리자 가뜩이나 힘든 불경기에 인간적 배신감까지 겹쳐 오랜 고민 끝에 문을 닫고 말았다. 한때 매장을 3개까지 오픈했던 이 친구는 ‘월급쟁이가 부럽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요즘 여기저기서 들리는 경제뉴스가 우울하다. 유가상승, 환율급락, 금리인상 등등.
첩첩이 악재들만이 놓여있다.
현재로선 유가상승의 상한선이 어디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월스트릿 저널은 연내 배럴당 80달러를 점치는가 하면 메릴린치는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개스 값으로 자동차 계기판 보기가 겁날 지경이다. 더 불길한 예감은 오르는 원자재 값에서 이어지는 생필품 값 상승이다. 불경기의 신호탄이다.
환율급락은 수출에 목숨을 걸고있는 한국기업들에게는 사형선고다.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현 마켓으로 볼 때 920원선은 한계선이다. 920원 이하로 내려가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버틸 수 있는 한계수준을 넘어간다는 것이다. 줄 도산이 예상된다.
금리인상은 어떤가. 계속되는 금리인상으로 일부 대출금리가 두 자릿수가 됐다. 소비자들이 금리상승을 체감하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모기지 연체율이 높아져가고 은행의 차압건수도 최근 갑자기 늘어났다고 한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기업들의 감원 뉴스도 매일 쏟아지고 있다.
경제위기다.
그러나 위기를 알면 위기가 아니다. 위기를 모르는 것이 더 큰 위기인 것이다. 위기를 알고 있으면서도 손놓고 대처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기업은 아이디어로 변화를 모색해야하고 가계는 효율적인 지출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세계 시계산업을 주도하다 전자시계의 등장으로 코너에 몰렸던 스위스의 스와치 시계가 패션시계로 전환, 성공한 것은 위기를 찬스로 만든 케이스다. 유명 정장 브랜드 영국의 버버리도 캐주얼 시장에의 깜짝 도전으로 한때의 침체를 극복해 냈다고 한다. 위기에 살아남는 길은 과감하게 타성을 버리는 변화와 열정이다.
봄이 무르익어 가는 시절이건만 전혀 봄기운을 느낄 수가 없다. 오히려 추운 겨울로 뒷걸음질치고 있는 기분이다. 우중충한 회색 빛 날씨가 꼭 요즘 돌아가는 경기와 닮았다. 이래저래 잔인한 봄, …그래도 봄날은 간다.
kjkwon@koreatimes.com
권기준 부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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