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은 아름다웠다.
어쩌다 보니 마지막으로 다녀온 지 16년이 되어서야 다시 찾게 된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6월말 2주 일정으로 함께 간 세 가정이 첫 주는 관광사 여행상품을 이용해 제주도와 동해안 일대를 돌고 나머지 시간은 수도권에서 보냈다.
경주에서 설악산까지 가는 길, 벼들이 파릇이 자라는 논이며, 옥수수 텃밭이며, 갈매빛 산들이 마음에 초록 물을 들여준다. 빗물 흐르는 차창 밖으로는 물안개 피어오르는 강물과 허리 잘린 반도의 현실을 일깨워주는 철조망 너머 고즈넉한 동해안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지난 수십년간 그래왔듯 ‘조국은 개발중’이었다. 강원도와 경기도 산간지방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로공사와 주택건설이 한민족 특유의 약동하는 힘을 새삼 느끼게 한다. 서울과 인근 신도시는 물론 과거 한갓진 시골이었던 지역에까지 아파트 숲이 들어섰으니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순환도로 등 크게 늘어난 찻길은 도시 안의 빠른 이동을 가능케 하고, 복개되었던 시절을 상상하기 힘들만큼 깨끗한 새 물길로 거듭난 청계천이 청량함을 선사한다.
소득 증가에 걸맞게 각종 문화·레저 시설들도 크게 늘었다. 화장실이 눈에 띄게 깨끗해진 대다수 식당과 부쩍 높아진 비즈니스 친절지수는 나그네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밤 11시께의 서울. 남산 타워에 오르니 은성한 불빛 사이사이, 30개에 가까운 한강 다리들은 유장한 강물에 빛그림자를 드리우며 콘크리트의 도시를 따스하게 감싼다.
연 25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패션 밸리’인 동대문 의류상가는 불야성이다.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각에도 젊은 여성들이 주류인 상인들과 직원들은 짬짬이 자장면과 순두부를 시켜 먹거나 신문에 난 퍼즐을 풀며 전국에서 몰려온 인파를 맞는다. 생생하게 깨어 사는 이들의 모습에서 모국의 희망이 절로 읽혔다.
해거름 한강 둔치에서 바라본 서울의 노을처럼, 따스했던 기억들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여행 목적도 어느 정도 달성된 것 같다.
물론 사람 사는 어디나 그렇듯 그림자도 있었다.
길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한 남자가 “Do you speak English?”라며 시비를 거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됐고,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까지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차에 탄 고객에게 인사하는 획일화된 마케팅은 스멀거림을 안겨 주었다.
줄서기는 많이 보편화되었다고 하나, 교통질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빈 공간을 찾아 차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통에 차선은 수시로 수가 바뀐다. 차량의 폭발적인 증가를 생각하면 이해도 가지만, 너나 없는 먼저 머리 들이미는 사람이 이긴다는 식의 운전은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사교육의 폐해는 더 깊어졌다. 고등학생들은 과거보다 더 늦어진 심야에 귀가하니, 모두가 미쳐 돌아간다는 누군가의 말이 실감난다. 영어교육 열기는 못 말릴 정도. 지난 수년간 여름방학마다 아이들을 미국에 데려와 영어를 배우게 했던 한 지인은 “분당 신도시에서는 그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며 혀를 내두른다.
지난 1일 특별자치도로 승격한 제주도의 한 농원은 특산품 상황버섯이 다른 곳보다 몇 배가 싸다는 감언이설로 관광객들을 현혹, 가족당 최고 1,000달러 어치를 구입하게 하는 기만상술을 발휘해 씁쓸함을 안겼다.
하지만 조국은 이같은 부족한 부분들도 언젠가는 극복하리라 믿는다. 한민족 특유의 열정과 인내로 머지 않은 장래에 선진국가 ‘대~한민국’으로 도약하리라 확신한다.
김장섭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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