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선(하-버그룹 수석부사장)
60대를 훨씬 넘은 노신사 하고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가 길을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광경이다. 이 노신사는 걸어가면서 이따금 앞에서 마주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반가운 표정으로 “하이! 굿모닝”, 아니면 “하우 아-유?”하면서 인사를 한다.
이 손자는 이것을 보면서 궁금도 하고, 의아하기도 해서 기어코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지금 지나간 사람들은 원래 아는 사람들이예요?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이 노신사의 대답인 즉 “처음 보는 사람들이란다” 손자는 이 말을 듣고 기가 막히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창피한 마음도 들었다.
“할아버지,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고 지나갈 때마다 먼저 인사를 해요? 꼭 잘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이! 나는 아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요” 이 노신사의 이름은 ‘머-리 후리드만’, 하-버 그룹의 창업자이고 몇년 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회장으로 있었던, 열정적이고 마음이 그 누구보다도 따뜻했던 유대인이었다. 또 나에게는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거의 40년 전, 처음 이곳으로 이민왔을 때만 해도 한국사람들의 수가 무척 적어서 간혹, 그것도 아주 간혹 길거리에서 같은 한국사람을 마주치면 정말 오래동안 알기나 한 것 같이 반갑게 “안녕하세요?” 인사하면서 스치고 지나가곤 했던 때가, 지금 생각하면 먼 옛 이야기 같기도 하다.
지금은 걸어 가다가도, 우리 서로 눈이나 마주치면 서로의 표정이 이상하게 굳기도 하고 다른 먼 곳을 쳐다보듯 시선을 돌리는가 하면 어떤 때는 그 표정이 마치 못 먹을거라도 씹은 것같은 씁쓸한 표정이거나, 아니면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2~3초 사이에 상대방의 신원파악이라도 한 듯 힐끗 쳐다보면서 자기 판단대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스치며 지나가는 예도 허다하다. 그러니 인사는 고사하고 짧은 미소라도 짓고 지나칠 기회조차 없어진다.
외국인들을 상대할 때에는 상대방이 나를 아는 척하지 않을 때에는 무시당하는 것 같이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면 동양사람이라고 깔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알던 ‘머-리 후리드만’의 모습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남이 나에게 먼저 인사하기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해 보자. 기껏해야 창피밖에 더 당하겠나 싶어 내가 먼저 실천을 해본다. 회사 안에서도 지금까지는 그냥 스쳐만 가던 사람들한테도 볼 때마다 아는 척하면서 인사를 먼저 한다. 미소를 지으면서 ‘하-이!’ 하고 인사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대답하는 인사는 더 반갑게 나를 맞아준다.
길을 걸어 가다가도 간혹 사람을 마주쳐 먼저 가벼운 미소를 지을 때면 누구를 막론하고 열이면 열, 모두가 내가 한 것 같은 인사를 나누고 지나간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이 가볍고 상쾌해진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다 나하고 가깝게 느껴지고 이 세상이 더 따뜻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을 느낀다. 미국사람들과는 달라서 우리는, 나부터가 무뚝뚝하게 자라왔고 또 그렇게 살아와서인지 인사와 미소에 인색한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이제라도 서로에게 짧고 따뜻한 인사 한 마디, 아니면 가벼운 미소를 지을 때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면서 나 자신은 그 이상의 큰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되고 더 밝고 화기애애한 우리의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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