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 참여확대와 관련, 정식참여가 북핵 해결을 위한 한미공조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측면과 북한을 자극하고 남북간 충돌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놓고 고민을 거듭해온 정부가 결국 후자 쪽에 무게를 실었다.
지난달 9일 북한 핵실험으로 인해 북핵 확산 방지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정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해온 PSI 정식 참여 방안을 포기한 것은 6자회담 재개가 결정된 상황에서 PSI 정식참여가 갖는 대북 압박의 정치적 효과를 우려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정부는 PSI의 원칙과 목적을 공식 지지키로 하는 한편 역외 차단훈련시 물적지원의 길을 열어둠으로써 최소한의 `성의’는 표하기로 했다.
정부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그간 여러 경로로 한국의 PSI 참여확대를 종용해온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부 결정 내용은 = 11일 열린 비공개 당.정.청 회동에서 결정된 내용을 정리하면 PSI에 정식 참여하지 않는 대신 PSI의 목적과 원칙에 대한 지지를 공식 표명한다는 것이다.
또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에 명시된 화물 검색 관련 규정에 따라 우리 영해 안에서 북한의 WMD 운송선박에 대해 검색 등 조치를 취해야 할 경우 PSI와 관계없이 남북해운합의서에 근거해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아울러 미 측이 지난해 제시한 8개 참여방안 가운데 우리가 참여를 거부한 3개 방안(정식참여.역내 차단훈련시 물적지원.역외 차단훈련시 물적지원) 중 하나인 역외 차단훈련시 물적지원과 관련, 개별 훈련별로 참여를 긍정 검토하기로 했다.
PSI 정식 참여를 하지 않는다는 뜻은 ▲비국가 조직에 의한 대량살상무기 및 관련 물자의 이전을 차단하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 강구 ▲ 국내법 및 국제법 체계 강화 등을 내용으로 담은 PSI의 `차단원칙’(interdic tion principles)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SI 정식 참가국들은 모두 이 원칙을 승인한 나라들이다.
아울러 정부는 PSI의 목적과 원칙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를 표명키로 함으로써 `목적과 취지에 공감한다’는 핵실험 이전의 입장에 비해 한걸음 더 나아갔다.
정부는 또 역외차단훈련시 물적지원과 관련, 한반도 주변 등 동북아 주변 수역을 제외한 다른 수역에서 PSI 훈련이 있을 경우 물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열어 놓았다.
◇정부 결정 배경은 = 정부가 정식참여를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6자회담 재개 합의, 여당과 일부 여론의 반대 목소리, 그리고 공화당의 패배로 나타난 미국 중간선거 결과 등 내외부 요인이 어우러진 결과로 분석된다.
정부는 북한 핵실험 이후 옵서버 수준에 머물고 있는 PSI 참여 수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그간 참여확대 방안을 검토해왔다.
이 과정에서 정부 안에서도 정식 참여 필요성에 무게를 싣는 외교부와 정식참여가 북한을 자극할 것을 우려하는 통일부 사이에 적지 않은 의견 충돌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김근태(金槿泰) 열린우리당 의장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등이 PSI 참여에 강력히 반대하는 등 이 문제가 정치쟁점이 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정부는 결정에 앞서 한반도 주변의 지정항로를 통과하는 북한선박에 대해서는 남북해운합의서를 근거로 검색 및 퇴거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과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남북간 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그 기조 아래 PSI 정식 참여를 의미하는 `차단원칙’을 승인하되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PSI 활동에는 동참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는 방안과 북한의 반발을 살 수 있는 정식참여는 하지 않은 채 역외 훈련 및 활동에 물적 지원을 하는 방안 등 2~3가지 방안이 최종단계까지 검토됐다.
결국 정부가 정식참여를 하지 않고 참여수위를 조절하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10월 31일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결정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PSI에 정식 참여하더라도 참여국 재량권을 활용해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긴장상황에서는 몸을 뺄 수 있다는 점도 감안됐지만 북한이 회담에 돌아오기로 하면서 대화국면이 조성된 상황에서 북한의 상당한 반발이 예상되는 PSI 정식참여는 부작용이 크다는 점이 더 중요하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더해 11월7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의회권력을 장악하게 됨에 따라 `악의적 무시’와 `압박’으로 대표되는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의회의 강력한 견제를 받게 된 점도 일부 고려됐을 개연성이 있다.
특히 여당과 일부 여론의 강력한 반대를 무시한 채 PSI에 정식 참여할 경우 부담이 크다는 국내 정치 차원의 고려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고육지책’ 평가 속에 미국 불만 우려도 = 정부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6자회담 재개 국면에서의 `고육지책’으로 평가하는 반면 일부는 북핵문제와 관련 한미공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때문에 우리 정부가 최소한의 참여확대 수준에 그친데 따른 미측의 반응도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정부가 정식참여를 하지 않으면서 PSI의 목적과 원칙을 공식 지지하기로 한 것도 우리의 특수상황에 대해 미국의 이해를 구하는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북한문제의 최우선 당사국인 한국의 정식 참여를 통해 PSI의 세 확산을 노렸을 미국으로선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지난 6~7일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의 방한때도 PSI 문제는 `우리 판단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던 미국이 향후 외교경로 등을 통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한 외교 전문가는 우리 정부가 PSI에 대한 지지 입장을 피력하긴 했지만 결국 정식참여를 하지 않은 것은 향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공조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일종의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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