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권(동부제일교회 목사)
겨울은 사철의 마지막 계절이다. 겨울은 우리의 마음을 을씨년스럽게 한다. 거리나 공원이나 심지어 산들에 늘어서 있는 나목(裸木)들이 그렇고, 살을 에는듯한 쌀쌀맞은 바람이 그렇다.자연이 이렇듯이 겨울은 인생을 삭막하게 하고 우리의 생활을 움츠리게 하며 쓸쓸하고 고독하고 적막하게 한다.
멀리 멀리 떠난 정든 사람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아 조바심을 갖게도 한다. 언제 인생을 마치게 될지 모르는 노인에게는, 더구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겨울은 자신의 허망한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며 무겁고 처절한 감정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청년들, 아니 불혹(不惑)의 장년일지라도 겨울이 그렇게 삭막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오리라는 자연법칙에 따르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순(耳順)을 지나고 보면 겨울이 지나도 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이, 겨울 그것만으로만 온갖 슬픈 상념에 사로잡히곤 한다.
겨울은 겨울대로 좋은 점들이 많다. 순백(純白)의 눈을 볼 수 있는 것은 겨울이 아니고는 어림도 없다.
눈이 시립도록 투명한 하늘도 겨울에 유난하다. 따뜻한 햇볕의 고마움도 겨울이고야 절실하게 된다. 이불 밑의 비밀스런 속삭임도 겨울 아니고는 가망이 없다. 유달리 얼어붙는 추위를 피해 따뜻한 커피샵에 들어앉아 뜨거운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한 모금씩 음미하며 마시는 재미도 겨울 아니고는 가질 수 없다. 춥기 때문인지 사람들과 나누는 정이 겨울에 더욱 따스하게 전달됨을 느낀다.이와 같은 겨울만이 가지는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마음에는 아무래도 겨울은 춥고 매운 삭막한 계절로만 남는다.
사도 바울은 이런 겨울을 그의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더불어 따뜻한 정으로 녹이기라도 할 양이었는지 디모데에게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고 당부했다(딤후4:21).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16절) 더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사도 바울을 떠났지만 더러는 고난받는 것이 힘겨워 그를 떠나기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에게는 그의 평생 최대의 겨울을 맞이했던 것 같다.
그는 노년이었다. 감옥에 갇힌 몸이었다. 그리스도에게 산화(散華)의 제물이 되는 순교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6절). 모두가 훌훌히 그의 곁을 떠나고 누가만이 외로이 그를 지켜보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는 생의 마지막 겨울의 얼어붙으려는 마음을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이 옴으로 녹여보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그 겨울이 지나면 화창한 봄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가 주님께로 가게 되면 그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는 소망으로 기뻐했다(8절). 그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노년은 인생의 겨울이다. 자녀들이 슬하를 떠난다. 못 보면 한시도 살 수 없을 것 같던 친구들은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먼 곳으로 떠나 살기도 한다. 사랑하던 많은 사람들도 일손을 놓은 노인 곁을 떠나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인생의 겨울이 지나면 영원한 봄을 맞이할 것임을 확신하는 소망을 가진 자들에게는 겨울이 춥고 삭막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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