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원(취재1부 부장대우)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지만 지난 1979년 미국이 처했던 상황과 매우 흡사한 일을 대한민국이 요즘 겪고 있다.그 상황이란 60여명의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직원 인질사태를 얘기한다.
1970년대 말 팔레비 당시 이란 국왕의 미국 망명이후 이란 국민들의 반미감정이 절정을 이루면서 과격파 학생들과 새 정권이 미 대사관 직원들을 1년 넘게 인질로 삼은 이 사건은 비록 1980년 인질들이 석방되면서 일단락됐지만 미국의 자존심에 커다란 흉터를 남겼다.
이 사건은 또한 미국의 모든 초선 대통령의 희망인 재선의 꿈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앗아갔다. 미 국민들은 자국민들의 인질사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카터 행정부의 무능함을 투표소에서 질타했으며 그 결과,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이 제 40대 미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란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인질들은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1981년 1월20일 모두 석방됐다. 더욱 더 공교롭게도 인질들이 석방된 지 5년이 지난 1986년, 레이건 행정부는 이란에 불법으로 무기를 판매한 혐의로 ‘이란 게이트’라는 스캔들을 겪었다.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사태가 2주째로 접어들면서 아직까지 그렇다할 진전 없이 무고한 2명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의해 숨졌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현지로 특사를 파견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자를 비롯해, 전세계 모든 한국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과연 노무현 행정부가 인질들의 석방을 위해 얼마만큼의 ‘물밑작업’을 펼치고 있느냐는 점이다. 대통령의 리더십과 행정부의 능력은 바로 이와 같은 ‘위기’(crisis) 상황 속에서 빛을 발휘하느냐, 아니면 수그러드느냐에 따라 평가된다. 미 사학자들과 국민들의 여론에 있어 레이건이 카터보다 훨씬 더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죄 없는 국민들이 무장 세력에 의해 납치되고 그 중 2명은 살해되기까지 했다. 하루빨리 나머지 피랍자들을 석방시키거나 구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목표를 이룩하기 위한 방법의 정당성과 투명성은 둘째 문제다.
1초 1초가 지나면 지날수록, 탈레반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인질 한명 한명의 이름이 사망자 명단에 오르면 오를수록, 분노하는 한국인의 손가락은 청와대의 방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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