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답스(Lou Dobbs)는 미국의 대표적 뉴스 채널인 CNN의 황금시간대에 자신의 이름을 달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앵커다. 그 만큼 극명하게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방송인도 드물 것 같다. 답스는 이민 관련 강경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인기를 구가하며 칭송과 지지의 대상이지만, 이민자 권익단체들에게는 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반 이민론자’다. 수백만 가구가 시청하는 뉴스 방송에서 불법 이민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소위 ‘이민자들의 침공’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불체자 뿐 아니라 합법적인 외국인 전문직 인력과 그들을 고용하는 기업들까지도 중산층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주범으로 공격하는 것도 그의 특기다.
그런데 답스는 특히 자신의 논조를 펼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보도도 서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가 왜 이민자 문제와 관련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지는 그의 프로그램에서 지난 2005년 4월과 올해 5월 반복해서 다뤄진 내용을 되새겨 보면 알 수 있다.
답스는 이들 방송에서 “불법 이민자들의 침공이 많은 미국인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며 멕시코 국경을 넘어오는 이민자들 때문에 ‘나병’(leprosy)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했다. 지난 40년간 미국내 나병 케이스가 900건에 불과했는데 최근 3년간에는 7,000건으로 급증했다는 기자의 리포트를 곁들이면서.
그런데 나병 케이스를 집계한 공식 통계를 들춰보니 이같은 보도가 얼마나 엉터리인지가 금방 드러났다. 공식 통계상으로 7,000건이라는 숫자는 지난 3년간이 아니라 30년간 보고된 나병 발병건수 집계였던 것이다. 또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의 통계상 2005년 전국의 나병 케이스는 모두 166건이었는데 이들 환자의 70%는 백인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답스의 프로그램에서는 또 전국 연방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범죄자들 가운데 3분의 1이 시민권자가 아닌 이민자들이라는 내용이 방송을 타기도 했다. 이민자들은 범죄율이 극히 높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보도였지만, 이 또한 실제와는 거리가 먼 허위 숫자에 불과하다는 이민자 단체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답스를 둘러싼 이같은 논란을 보며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은 그가 이같은 방송을 통해 ‘제노포비아’(xenophobia)를 부추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낯선 것을 지칭하는 ‘제노’와 싫어한다는 뜻의 ‘포비아’의 합성어로 ‘외래인 혐오 현상’ 또는 ‘이방인 공포증’을 일컫는 제노포비아의 함의가 답스와 같은 부류가 줄기차게 밀어붙이는 ‘반 이민정서’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체류 신분을 두고 ‘불법은 어디까지나 불법’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불법 이민자 문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분히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있다. 미국은 사회경제적 발전 과정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노동력이 필요했고, 많은 미국인들이 과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계층 상승을 한 이면에는 끊임없이 밖으로부터 충원되는 이민자들이 있어왔던 것이다.
미국에 들어와 흉악 범죄를 일삼거나 갱 활동을 하는 불법 이민자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들을 제재하는 것은 응당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부풀려가며 마치 전체 이민자들이 범죄자나 테러리스트인양 막연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은 현대판 미국사회의 ‘제노포비아’에 다름 아니다.
본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체류신분의 제약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불법 이민자 자녀들의 구제를 위한 ‘드림법안’(DREAM Act)이 지난주 그나마 반 이민 기류가 적었던 연방 상원에서 좌초했다. 또 체류신분을 따지지 않고 운전면허증을 발급하겠다던 뉴욕주 당국이 결국 등급이 다른 불체자용을 따로 만드는 것으로 후퇴하기도 했다. 최근 이민자 문제를 둘러싼 일련의 일들은 이민자들을 향한 제노포비아의 먹구름이 생각보다 넓게 미국 사회를 드리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김종하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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