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아 가르자가 살고 있는 그란헤노의 집. 이 집이 들어선 땅은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유산으로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법정소송도 불사하고 있다.
멕시코 국경 따라 철제담장 설치
토박이주민들 반발, 곳곳서 마찰
글로리아 가르자는 그 땅을 전체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부분적으로 소유했을 망정 한 그 땅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하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간단한 스타코 식 집이다. 나무로 된 베란다가 딸려있고 마당의 우물은 남편이 주워 모은 기이한 돌들로 장식돼 있다.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2에이커의 땅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이다.
1767년 당시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3세가 초기 개척자였던 그녀의 조상에게 하사한 필지 중 일부다. 이 같이 유서가 깊은 유산이라는 점에서 그 땅에 대한 글로리아의 애착은 남다르다. 그래서 그 땅을 가로질러 멕시코와 가르는 국경, 다시 말해 철제 담장을 건설한다는 연방정부 계획에 그저 묵묵히 따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녀가 보기에는 연방정부가 벌이고 있는 불법체류자와의 전쟁은 잘못된 정책이다. 그 잘못된 불법체류자와의 전쟁에 원치도 않는 희생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다. 우리에게 이곳은 정서적으로 특별한 곳이다. 돈으로 그 가치를 잴 수 없는 곳이다.” 글로리아의 말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텍사스 그란헤노는 인구래야 400명 정도의 멕시코와의 국경지역의 마을이다. 이웃들은 대부분이 친척이 된다. 조카와 아저씨 관계 등. 이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이 공통의 조상을 두고 있으면서 수 세기에 걸쳐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왔다. 스페인 통치에서, 멕시코 정부에 이어 잠깐의 텍사스 공화국 통치시대도 겪어왔다. 이 그란헤노가 그런데 그 존속에 위협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미연방 정부가 멕시코와의 국경지역에 370마일에 이르는 철제 담장을 설치기로 결정했는데 그 담장이 이 마을을 관통하게 되어서다.
블루프린트에 따르면 그란헤노 시 전체 택지의 3분의1이 담장 설치지대에 놓여 있다. 이 마을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 역할을 하는 리오그란데 강으로부터 1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 정부계획은 그러나 강을 따라 담장을 세울 경우 홍수 등에 떠내려 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그란헤노 마을 남부지역을 따라 담장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땅을 둘러싼 다툼은 이 그라헤노 마을에 있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있었다. 남북전쟁 후에는 양키들이 몰려왔다. 그 양키들과 테하노스로 불리던 이지역 토박이들 간에 땅 소유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최근에는 10여 년 전에도 소요가 있었다. 카운티 정부가 미국과 멕시코를 잇는 다리건설을 계획을 하면서 이 지대 일대를 수용하는 계획을 세웠던 것. 마을 주민들은 이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땅을 둘러싼 다툼은 이 그란헤노로서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멕시코와의 국경지대에 철제 담장을 세운다는 연방정부의 방침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을 통과하는 담장 설치에 최종적 결정이 내려진 건 아니다. 지역주민의 의견을 최대한으로 수용해 결정을 내릴 것이다.” 정부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나 국경수비대의 말은 다르다. 그란헤노 같은 국경지역의 작은 마을들은 곧잘 강을 건너오는 불법입국자나, 마약밀매자들의 거점이 되고 있어 특히 물리적인 봉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국토안보부의 입장은 더욱 단호하다. 계속 정부정책에 제동을 걸 경우 땅주인들을 법정에 불러 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토지수용령을 발동하겠다는 으름장이다.
일부지만 토박이 주민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스페인국왕으로부터 토지를 받은 사람들의 후예로서 미국의 연방정부가 뺏어갈 수 없는 토지소유권을 지녔다는 주장이다. 일부 변호사들은 그 주장이 받아들이면 무료변호를 자진해 맡고 있다.
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은 그러나 그게 아니다. 9.11 사태 이후 그런 주장은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민의 안보를 목적으로 한 철제담장설치 계획이 무산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미-멕시코와 국경을 따라 설치되는 기나긴 철제담장, 그 계획을 둘러싼 현지주민과 정부의 마찰은 그란헤노에서만 빚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엘파소에서 브라운스빌에 이르는 전 국경지역에서 비슷한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국경너머 멕시코 마을주민들은 이들 국경지대 토박이들에게 있어 결코 남이 아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적 동질집단이다. 그리고 때로는 피붙이기도 하다, 때문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세기 살아남은 옛 마을
‘사라질 위기’맞아 몸부림
그란헤노는 옛적에는 수천 에이커에 이르는 농장들이 산재해 있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 농가들은 그 옛날 스페인국왕으로부터 땅을 하사받은 농장주들의 후손들이다. 이 마을 주민 중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패밀리 네임, 문귀아스니, 보카네그라스니 하는 이름들은 그들이 바로 그 후손임을 말해준다. 가르자, 안잘두아 등의 패밀리 네임도 상당히 유서가 깊은 패밀리 네임으로, 대대로 이당에서 살아온 토박이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런 이름을 가진 토박이들은 대부분이 1848년 리오그란데 강을 미국과 멕시코 국경으로 인정한 과둘라페 히달고 협정 이전부터 대대로 이 땅에 거주해왔다. “우리가 미국에 온 것이 아니다. 미국이 우리에게 왔다.” 그 후손의 하나인 레이 안잘두아의 말이다.
밀감 밭이 조성된다. 주택개발이 이루어진다. 홍수방지 시설이 건설된다. 이런 식으로 지난 한 세기동안 그란헤노의 땅들은 조금씩 썰어져 나갔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떠나고 이 마을에는 역사적인 패밀리 네임을 가진 소수의 근로계층 가정만 남게 된 것이다. 오늘날 그란헤노는 시청건물 하나에, 교회건물 하나, 술집 하나, 그리고 몇 개밖에 안 되는 업소에 몇몇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몰려 있는 타운이 됐다. 이 타운의 면적은 모두 해 3분의1평방마일에 불과하다.
이 마을 주민의 평균 연소득은 9천여 달러로, 절반 이상의 주민은 빈곤선 이하의 소득계층이다. 이처럼 물질에 있어서는 빈곤하지만 전통에 있어서는 풍요하다. 타운의 역사가 수세기가 넘는다. 그 역사와 전통을 지키려는 의도인지 외지에 나가살던 사람들도 죽어서는 이 마을로 되돌아온다. 고색창연한 이 마을의 묘지에 묻히기 위해서다.
이 마을의 토박이들은 외부인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이다. 어느 정도인가. 해리 트루먼 대통령 시절, 그러니까 반세기도 전인 1951년 한 외부의 청년이 이 마을 처녀에게 반해 결혼을 하고 이 마을에 주저앉아 살아왔다. 그런 사람도 아직까지 진정한 의미의 주민으로 인정해 주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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