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목사와 이세은 사모가 예배당에서 함께 했다.
“젊은 목사가 더 부흥시켜주길…”
나일스 소재 레익뷰 장로교회에서 30여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온 이종민 목사가 오는 20일 은퇴한다.
이종민 목사는 20일로 예정된 ‘은퇴 감사 예배 및 원로목사 추대식’에 앞서 10일 오전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목회나 사역에는 은퇴가 없다. 30여년을 목회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삶을 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은퇴를 결심한 동기에 대해 60세가 되던 해 65세가 되면 은퇴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이는 능력있는 젊은 목사가 하나님의 성전이 교회를 더욱 부흥시킬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며 미국장로교의 헌법에 따르면 목사와 장로에 대한 은퇴 연령이 없다. 교회가 원하고 목사자신이 건강이 허락된다면 70세가 넘어도 담임목사직을 맡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교회를 개척 때부터 30년 넘게 했으면 이제는 젊은 세대 목회자에게 목회를 넘겨주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다. 1세는 이민자 중심으로 교회의 기초를 세운 것이다. 교회가 1세 중심이면 우리가 죽은 뒤 교회가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한인 2세와 3세들이 여기에 와 살아야하며 우리가 그들에게 신앙을 넣어 주지 않으면 그들이 어디로 갈 지 모른다. 차세대 목회를 위해서는 젊고 유능한,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열정을 가진 젊은 목사가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후임 담임목사에 대해 경험이 많은 40·50대 목회자로 2중언어가 가능한 한인 1·5세도 괜찮다. 무엇보다 왕성하게 일 할 목회자가 왔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하며 목회 경험으로 비춰볼 때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는 열정이 왕성해 교회 부흥의 기틀을 다질 수 있는 시기이며 50대 중반은 무르익어 말씀을 잘 전하는 목회자가 된다. 열정이 왕성한 목회자가 초빙돼 교회를 (지금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교회발전에 대해 그는 기독교 고등학교를 짓는 것이 목표였다. 한 캠퍼스안에 한국학교, 영어권 교회, 한국어권 교회가 있어 영어예배와 한국어 예배를 동시에 볼 수 있고 후세 기독교 리더를 길러 낼 수 있는, 한인 2세와 3세를 위한 기독교 고등학교가 세워져 모든 세대가 함께하는 것이 꿈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약 2천만 달러가 들것으로 예상돼 지금은 이루지 못했지만 후임 목사가 소명의식을 갖고 학교를 세웠으면 좋겠다고 후임 목회자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그는 목회자는 첫째 소명감에 불타야 한다라며 하나님이 이사야를 부를 때처럼 신학을 공부할 때 처음 받은 소명감을 지켜야 한다. 환경에 따라 변하면 내 목회는 할 수 있어도 예수님 목회는 할 수 없다고 일침했다. 그는 이어 ▲하나님 말씀안에서 목양 할 것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되는 사랑 할 것(내 이웃을 사랑하는 목회) ▲예수님 십자가 짓는 사랑 할 것을 강조하며 시험 당할 때 지금 교회를 개척한다고, 지금 시작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두려울 것이 없다. 낮아질 데로 낮아진 곳에서 시작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담임목사 은퇴 후 계획에 대해 이번 달 말 막내딸이 남편과 함께 에티오피아로 의료 선교를 떠난다. 2월 중 그곳을 방문 한 뒤 3월 초부터는 시카고를 떠나 인터링 패스터(임시 설교 목사)로 타지역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사역할 것이라고 밝혔다.
막내딸이 선교사가 된 것에 감사하다라며 슬하에 1남2녀를 둔 그는 아들이 목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교회를 개척하며 가정에 중심을 두지 않은 아버지를 보면서 아들은 가정 중심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비록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지만 어려운 곳을 연결해 주는 선교사를 위한 파일럿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아들을 대신 막내 딸이 의료 선교사로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 아바바의 미션 어린이 병원에서 메디칼 디렉터로 선교활동을 떠나 내 뒤를 잇는 것 같아 기쁘다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는 한인 동포들에게 감사하다. 한인 이민1세들이 이민생활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인사회를 키운 그들에게 감사하다. 또한 영적인 지도자인 목회자들 역시 눈물과 땀으로 이들 1세들과 함께했다. 동녘 자들에게도 감사하다. 앞으로도 교회가 하나 돼 영적인 구령운동에 함께하기를 기도한다고 두손 모아 소망했다.
한편 이종민 목사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53년 부흥회를 통해 예수님을 처음으로 체험한 뒤 미국 남장로교 (현재 미국 장로교) 선교부가 세운 전주 신흥고등하교에 입학 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김창식 국어선생(함석헌 선생님의 제자로 이북 평양 숭실하교 선생역임)을 만나 김창식 선생이 2학년 180명 가운데 12명을 골라 성경공부와 함께 제자 훈련 및 농촌 계몽운동을 위해 조직한 ‘참 흙 클럽’에 가입하면서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한국신학대학(현재 한신종합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1966년 대학원에 진학하기 1년 전부터 철원 오성산 인근에 세워진 개척교회에서 전도사로 처음 목회 활동을 시작했으며 68년 이세은 사모와 결혼에 이어 71년 한국기독교 장로교에서 목사안수 받았다. 1972년 동경신학대학 수학 후 73년 도미 75년 오하이오 주 와이브레너 신학대학과 86년 멕코믹 신학대학에서 각각 신학공부를 마쳤다.
레익뷰 장로교회는 이종민 목사를 비롯한 1977년 1월 당시 30대 젊은이였던 신현정, 한상은목사, 박병일 장로, 권오현 전문의에 의해 개척됐으며 이종민 목사는 79년 5월 담임목사로 취임됐다. 이후 79년 10월 미국장로교 시카고 노회에 가입, 12월 노회원이 되었다. 1980년 2월 교회 가입예배와 동시에 목사 위임식, 초대 장로 신현정, 한사은, 박병일 장립식 및 안수식을 하면서 첫 당회 조직돼 교회로 첫발을 내딛었다. 시카고에 교회를 세운지 7년만인 83년 현재의 교회를 구입, 85년 3월에 입당했다. <임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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