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성장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지난달 20일 아이오와 데스모니스의 한 지지 모임에 가족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오바마가 9살되던 1970년 어느날 어머니와 인도네시아 아버지, 그리고 의붓 동생 마야 소토로와 함께 찍은 사진.
무려 5개월여나 계속됐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47·일리노이)가 후보지명에 필요한 2,118명의 대의원을 확보하면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그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04년 11월 일리노이주에서 미 역사상 두번째 흑인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오바마 의원은 그해 대선 때 보스턴의 민주당 전당대회에 찬조연설자로 나서기 전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흑인으로서 어렵게 성장하면서도 하버드 법과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의 주류사회에 구김살 없이 진입한 젊은 흑인정치인의 통합과 희망의 메시지는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오바마는 누구인가
부모 이혼·마약·가난 불우한 유년기
하버드·컬럼비아대 거쳐 리더로 두각
▲어린시절
오바마 상원의원은 1961년 8월4일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케냐출신의 흑인 아버지 ‘버락 오바마’와 캔자스주 출신의 백인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는 케냐에서 하와이에서 유학 중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름인 버락은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축복받은`이란 뜻이다. 독특한 이름만큼 그는 출생부터 남달랐다. 오바마가 태어난 지 2년이 되던 해 오바마의 아버지는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위해 혼자 보스턴으로 떠났고, 부부의 결혼 생활은 결국 파경에 이른다.
여섯살 때 어머니의 재혼으로 오바마는 인도네시아로 건너간다. 4년간 그곳에서 살면서 낯선 환경에 내몰린 그는 병으로 죽어가는 이웃과 걸인들을 접하면서 빈곤에 눈뜨게 된다. 4년간 그곳에서 살기도 했다.
어머니의 결혼 생활이 또 다시 흔들리면서 10살의 오바마는 어머니와 헤어져 하와이의 외가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때 또 다른 전환기를 맞는다. 자신의 피부색을 다시 보게 됐고 미국에서 흑인으로 사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방황기
흑인 혼혈, 그리고 아시아 문화권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고교 시절 마약을 접하기도 했었고 청소년 시절 인종 문제로 정체성에 대한 갈등도 경험했다고 30대 초반에 그가 직접 쓴 회고록 ‘내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된 오바마는 농구부에 들어가 단장이 됐다. 하지만 소외감을 느껴 흑인 학생들의 거친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술은 물론 마약에도 손을 댔다.
오바마는 어두웠던 성장기를 돌아보며 “나는 인도네시아 아이, 하와이 아이, 흑인 아이, 백인 아이로 자랐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가 주는 양분의 혜택을 모두 받았다”고 술회했다.
오바마가 하와이에서 고등학교 졸업식때 외할아버와 외할머니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정체성 확립
1979년 LA 옥시덴탈 칼리지에 입학한 오바마는 2학년을 마치고 뉴욕 컬럼비아대에 편입했다.
미국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소수민족 거주지역을 둘러보고 관련 서적을 탐독했으며 전세계를 돌아다녔다. 25년전에 가족을 떠난 아버지를 알고 싶었던 그는 케냐를 방문, 아버지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하버드 법학 대학원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90년에 권위있는 학술지 하버드 로 리뷰의 첫 흑인 편집인에 오른 그는 정계 입문을 위한 기초 자질을 닦는다. 91년 하버드 법학대학원을 우등 졸업한 그는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출간한다. 돈을 버는 대신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에 월스트리트 대신 법률회사에 들어가 국민권 관련 소송을 주로 맡았다.
▲정체성 확립 및 정계진출
1979년 LA 옥시덴탈 칼리지에 입학한 오바마는 2학년을 마치고 뉴욕 컬럼비아대에 편입했다. 이곳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하버드 법대에 들어갔고 ‘하버드 법률 리뷰’의 첫 흑인 편집장을 지냈다. 뉴욕 할렘과 시카고의 빈민지역에서 활동가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1990년대 초에 일리노이주의 인권 변호사로 명성을 높이며 지역에서 기반을 다진 뒤 1996년 일리노이주 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본격 발을 들여놓았다.
주 상원의원을 3번 연임한 그는 2004년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70%의 기록적인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중앙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한편 오바마는 시카고대학병원 대외업무 담당 부원장인 부인 미셸(44)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프린스턴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 법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미셸 오바마는 남편의 선거자금 모금에 발벗고 나서는가 하면 오바마 의원의 강력한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맹렬히 공격하기도 하는 등 다른 정치가 아내의 틀을 벗어나는 신세대 미국 여성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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