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측 16년 집권도 가능, 오바마측 거래는 없다
(워싱턴=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경선 승자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패자인 힐러리 클린턴 의원간의 신경전이 팽팽하다.
5개월간의 대접전이 오바마의 승리로 돌아간 뒤, 두 사람은 4일 워싱턴에서 만났다.
워싱턴 유대인회의에서 이날 오전 차례로 연설한 오바마와 힐러리는 무대 뒤에서 잠시 만나 얘기를 나눴다고 오바마가 밝혔다.
오바마는 방금 힐러리와 얘기를 나눴다며 우리는 곧 대화하기로 했고, 민주당이 단결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힐러리가 패배를 시인할 계획임을 내비쳤느냐는 질문에는 자세한 얘기는 못했다. 그녀가 지지자들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이해할만 일이라고 오바마는 말했다.
앞서 오바마는 3일 미네소타 세인트 폴에서 경선 승리를 선언한 뒤 힐러리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었다. 오바마는 나중에 이뤄진 힐러리와의 통화해서 만남을 제의했으나 구체적인 회동계획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와 힐러리는 4일 워싱턴 유대인회의 연설에서도 서로를 치켜세웠다.
힐러리 때문에 미국과 민주당은 발전했고, 나도 힐러리와 경쟁하는 영예가 있었기에 더 좋은 후보가 될 수 있었다고 오바마는 말했다.
이어 연사로 나선 힐러리도 오바마를 못 미더워 하는 유대인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오바마 의원은 이스라엘의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처럼 부드러운 겉 분위기와는 달리 양 진영의 물밑 신경전은 첨예하다.
힐러리는 이날도 패배를 시인하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지자들과 상의를 한 뒤 입장을 밝히겠다는 게 힐러리의 설명이다.
힐러리측은 그러면서 부통령 후보 용의를 흘리고 있다.
힐러리는 전날 뉴욕지역 의원들과의 대화에서 부통령을 맡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테리 매컬리프 선거본부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오바마-힐러리 티켓이면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오바마-힐러리 티켓이 성사되면 우리가 백악관을 16년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바마측은 부통령 후보를 달라는 힐러리의 은근한 압박에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오바마측의 로버트 깁스 대변인은 진행 중인 거래는 없다. 먼지가 걷히고 힐러리가 안정을 되찾으면 오바마는 언제든 그를 만날 것이라고 부통령 후보를 둘러싼 물밑 협상을 부인했다.
오바마측은 이와 함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인 캐롤라인 케네디 등 3명으로 부통령 후보 물색팀을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오바마와 힐러리 두 진영의 속내는 좀 더 복잡하다.
대통령 후보가 물건너간 힐러리로서는 부통령 티켓을 어떻게든 따내야 하는 입장이다.
부통령 티켓만 따낸다면, 오바마 정부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차기를 노릴 수 있다는 게 힐러리측 계산일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오바마로서는 힐러리 지지층의 지원이 절실하다.
힐러리를 지지했던 백인 여성과 중산층이 자신을 미는 쪽으로 선회한다면 11월 대선 승리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두 차례나 집권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도 백인 여성표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만일 힐러리의 패배로 가장 상심해 있는 백인 여성표가 오바마에게 등을 돌리고 매케인 쪽으로 쏠린다면 승산은 멀어진다.
오바마가 어떻게든 힐러리를 껴안으려는 이유이다.
오바마는 경선 승리 후 가장 먼저 워싱턴에 들른 후 4일 저녁 힐러리의 안방인 맨해튼으로 올라가 두 차례의 모금행사에 참석한다. 힐러리를 향해 화해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오바마가 힐러리를 러닝 메이트로 삼을 지는 미지수다.
워싱턴 정치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가 구태 정치의 전형이자,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신을 압도하는 힐러리를 부통령 후보로 삼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더 많다.
힐러리의 열성 지지자인 에드 렌델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도 힐러리가 거래를 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협상은 안된다. 1천800만표를 얻은 힐러리라 해도 대통령 후보 지명자와 거래란 있을 수 없다고 렌델 주지사는 강조했다. 나아가 민주당의 단결과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일정과 유세 지역까지도 오바마측이 정하는 등 철저한 통제를 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하지만 힐러리가 부통령 티켓을 포기하고 순순히 물러날 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경선에서 오바마보다 더 많은 표를 얻은 힐러리가 패배 시인을 미루고 있는 것도 부통령 티켓을 내놓으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비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힐러리의 무소속 출마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민주당 소속으로 두 번이나 대통령을 지낸 클린턴 부부의 무소속 출마는 정치적 자살행위에 비유되지만, 그만큼 힐러리의 고정 지지층은 단단하다는 얘기다.
오바마의 깁스 대변인도 힐러리는 미 전역에서 엄청나게 많은 표를 얻었다. 우리는 그녀의 표들에 호소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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