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인종 차별 발언은 금기다. 그중 흑인에 관한 내용은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미국에 인종차별이 없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92년 무수한 한인들의 삶의 터전이 잿더미로 변했던 LA 폭동의 도화선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미국내 인종차별은 흔하다. 백인의 소수계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소수계끼리 손가락질하며 치고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흑인, 히스패닉을 경멸하는 한인들, 거꾸로 한인들을 시끄러 운 돈벌레라며 미워하는 흑인, 히스패닉들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내놓고 차별을 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지난해 4월 라디오방송 진행자 아이머스는 럿거스 대학 흑인 여자농구선수들에게 “곱슬머리 창녀들”이라고 비하했다가 6개월여 방송에서 쫓겨났었다. 그러니 안으로 곪아가는 종기가 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 2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가 남편의 연승을 축하하는 연설에서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미국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즉석 연설을 했다가 애국심 논란으로 지금까지 곤란을 겪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솔직하고 대단히 용기 있는 발언이다.
미셸은 시카고의 갱과 마약 범죄가 난무하는 전통 흑인 빈민지역 사우스 사이드 출신이다. 시카고 시청 수도국 펌프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가난과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자랐다.
그런 환경에서도 프린스턴대(사회학과)과 하버드대 법률대학원을 졸업했으니 얼마나 한을 품은 채 이를 갈며 살아 왔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미셸이 프린스턴대학 초년생때 백인 룸메이트의 엄마가 학교측에 한달 동안이나 끈질기게 룸메이트를 바꿔달라며 난리를 친 적도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자랑스런 미국 시민’으로 배워왔던 젊은 미셸에게는 ‘화이티’(whity)의 발악으로 보였을 것이다.
미셸은 시카고 병원의 부원장 시절, 백인 의사들이 흑인 10대 여학생들을 상대로 자궁암 백신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병원 주변 학교 교장들을 설득하자 앞장서 막았다. 1950년대 백인 의사들이 성병 실험에 참가한 흑인 남성들을 치료해주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적도 있었다며 교장들을 만류했다.
이런 미셸이 미국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었겠나. ‘화난 흑인’ 여성의 얼굴에 달려들듯 쏘아보는 그의 눈에는 불만이 가득하다.
대통령 후보의 부인이 “그동안 차별을 받아왔는데 흑인인 남편을 위해 미국인들이 투표를 해줬으니 고맙다”고 솔직하게 말한 것이다. 미셸은 금기시 된 인종문제를 거론한 것이고 미국인들은 미국의 치부를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아 안전부절 했다. “대통령 영부인이 되겠다는 사람이 저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느냐”
요즘도 공화당과 보수세력들이 호제삼아 뭇매를 때리고 있다. “미국에 불만이 많은 여성이 어떻게 영부인이 되겠다는 것이냐”는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아부꾼들의 말만 믿고 홀딱 벗은 채 시내 나들이에 나섰던 임금님이 한 소년의 솔직함에 정신을 차렸다는 안데르센의 동화다. 대세에 휩쓸려 누구하나 나신의 임금님에게 진실을 말하려 하지는 않았다. 어느 쥐가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수 있겠느냐.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후보로 대권에 도전하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내조하는 미셸 오바마가 미국인들이 보여주기 꺼려하는 문제를 털어놓고 공개했다. 거대한 고양이의 치부를 솔직히 공개한 젊은 흑인 영부인 후보의 거침없는 포문이 너무나 신선하고 즐겁다.
김정섭 국제부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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