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성용 특파원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로 최근 이주해 온 필리핀인 카를로스 디마노는 직장에선 영어를 쓰지만 88세 노모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면 고향말인 타갈로그어로 서로 소통한다.
23일 미 일간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에 따르면 최근 공개된 미 인구조사국 센서스 결과 디마노의 경우처럼 집에서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캘리포니아 거주민이 전체의 4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미국 주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미국 전체에서 보면 집에서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20%에 조금 못 미치고 영어에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9% 가까이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첨단 기술의 본산인 실리콘밸리 중심에 위치한 산타클라라 카운티를 비롯한 미국내 10개 카운티는 집에서 영어를 쓰지 않는 주민이 절반을 넘어선 51%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 민족.인종 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집에서 영어를 쓰지 않는 주민이 절반을 넘어선 미국내 카운티는 모두 10개이며 대부분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멕시코 국경 지역 등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집단 거주지라는 특성이 있다.
다만 실리콘밸리내 산타클라라의 경우 소수 민족 집단 거주지와는 무관하게 첨단 기술자와 유학생 등이 많이 몰려 있다는 특성 때문에 다른 지역과는 차이점이 있다.
1990년대 실리콘밸리 주민 중 집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비율이 3분의 1에 못 미쳤으나 2000년 들어 비율이 45%로 급격히 늘어났고 지난해 결국 절반을 넘어서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실리콘밸리는 초기 이민의 경우 베트남과 필리핀이 주류를 이루다 인도와 중국, 멕시코인이 급격히 늘어나는 양상을 보여 왔으며 산타클라라 카운티 주민 중 집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31만명, 중국.베트남.타갈로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28만명 가량으로 추정된다.
캘리포니아주 거주민 5명 중 1명은 자신이 영어를 꽤 잘한다고 생각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 간에는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거나 영어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비율이 높은 데 대해 우려스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지역적 영향력의 문제로 보는 사람도 있어 다소 시각이 엇갈린다.
후버 연구소 선임연구원 빅터 핸슨은 동일한 지역에서 5명중 1명이 공통 언어로 소통하기 어렵다면 참 혼란스런 일이다며 문화적으로는 일종의 민족주의 속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멕시포니아: 한 주의 형성’ 저자인 핸슨은 이 나라는 지배적인 인종이나 종교가 없다. 우리는 공통된 가치와 헌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통된 문화와 언어도 가져야만 할 것이라며 이주민이 소수 집단 지역으로 모이면 영어를 배우거나 완전한 미국인이 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핸슨은 미국이 인종.문화 등 여러 요소가 동화돼 있는 곳(Melting pot)으로 되돌아가야할 시점이 왔고 국경을 통제하거나 융합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이진숙 교수는 이주민들이 통합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은 영어를 배울 기회를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캘리포니아주의 언어가 서로 다르다는 게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믿지는 않고 있다.
그는 집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나라의 미개발 자원이다. 경제와 정치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우리에겐 언어의 경쟁력이 필요하다. 이주민들은 우리 사회의 이런 언어적 간극을 메울 수 있는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해석했다.
ks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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